‘시간을 물쓰듯 하다’.

초등학생도 잘 아는 격언이다. 하지만 앞으론 이 격언이 바뀔지도 모른다. ‘물 쓰듯 시간을 써라’로. 물의 가치가 시간보다 더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날이 머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아직 물 부족 상황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물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원과 공중화장실에서 무료로 물을 사용할 수 있고 수도요금도 싼 편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매일 샤워하고 생수를 구입해 마신다. 세수나 양치질을 할 때도 물을 담아 사용하는 대신 흐르는 물로 씻고 입을 헹군다.

물 부족 현상을 모르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와 산업계도 마찬가지. 일부 지자체에선 물 축제를 통해 살림을 꾸리고 대형 워터파크는 수십톤의 물을 매일 갈아치운다. 찜질방과 사우나 등 대중목욕탕에선 매달 수천만원의 수도요금을 지불할 정도로 물을 소비한다.

그렇다면 이대로 계속 물을 사용해도 괜찮을까. 전문가들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국제기구는 리비아, 이집트, 남아프리카공화국, 아이티 등과 함께 우리나라도 물 부족 국가로 지정했다.


◆물 파동 대비… 심각한 대한민국

“이제는 1970년대 석유파동(Oil shock)이 아니라 물 파동(Water shock)에 대비해야 한다.” (세계경제수자원 이니셔티브 보고서)

글로벌 물 쇼크 현상이 성큼 다가왔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환경전망 2050’에 따르면 2050년 전세계 인구 40% 이상이 심각한 물 부족을 겪을 전망이다. 또 세계 일부지역에선 지하수가 고갈돼 농업과 도시의 수도 공급에 위협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연합기구(UN)도 거들었다. UN은 지난 세기보다 인구가 두배로 증가한 반면 물 사용량은 6배 늘었다고 밝혔다. 여기에 급속한 도시화, 인구집중, 이상기후에 따른 가뭄이 세계적인 물 부족을 가중시켰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도 물 부족 현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오히려 위험국가에 속한다. OECD 환경전망 2050 보고서는 우리나라가 오는 2025년 물 기근 국가를 거쳐 2050년에는 평가 대상 24개국 중 물 스트레스지수(물 부족지수)가 가장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물 부족 현상에 따라 최근 지구촌에서 반향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물발자국(Water footprint)이다. 물발자국이란 인간이 사용하는 물의 양을 나타낸 지표다. 제품이 소비자에게 오기까지 ‘원료 취득-제조-유통-사용-폐기’ 전과정에서 사용하는 물의 총량과 물과 관련된 잠재적 환경영향을 정량화한 개념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5월 국가기술표준원이 물 절약을 위한 물발자국 산정방법을 국가표준(KS)으로 제정했다.
하지만 아직 초기 단계여서 이렇다 할 성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또 물발자국 규제가 본격화되면 산업계의 반발도 거세질 것으로 보여 도입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이 같은 상황임에도 우리 국민들의 물 낭비는 계속되고 있다. 환경부가 발표한 ‘2013년 상수도 통계’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 1명당 하루 수돗물 사용량은 평균 282ℓ. 2012년 대비 4ℓ 증가한 수치다. 미국(378ℓ)과 일본(311ℓ)보다는 물 사용량이 적지만 독일(127ℓ)과 덴마크(131ℓ) 등 유럽에 비하면 두배가 넘는다.

이태관 계명대 환경과학과 교수는 “물 부족현상으로 물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물값이 오르면서 국민 실생활과 경제활동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며 “지금 대비하지 않으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최악의 재난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댐 건설하고 수질관리 철저하게

물 부족 현상에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물을 넉넉히 보유할 수 있는 댐 건설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일본의 경우 물 부족에 대비하기 위해 2000년 이후 373개의 중소규모 댐을 건설했다. 반면 같은 기간 우리나라가 건설한 댐은 3~4개에 불과하다.

수질관리도 중요한 대안으로 꼽힌다. 대형댐을 건설한다고 해도 수질을 관리하지 못하면 오히려 자연환경만 파괴하는 꼴이 될 수 있어서다. 일각에선 수도요금 인상도 방법으로 제시한다. 국제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물발자국 규제에도 적극 참여할 것을 권한다.

이 중에서도 ‘뜨거운 감자’는 수도세 인상이다. 수돗물 가격을 올리면 물 낭비가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논리다. 우리나라 수돗물 가격은 평균 1㎥당 660.4원이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먹는 샘물이 2ℓ에 1000~1200원인 점과 비교하면 수돗물값이 1900분의 1에 불과한 셈이다.

이는 정부가 수도요금을 최소한으로 적용하기 때문이다. 수돗물을 생산하기 위해선 원수를 공급하는 댐 등 취수원시설이 필요하고 취수원 원수를 정수하는 수돗물 공장 격인 정수장을 건설, 관리해야 한다. 정부는 시설물을 관리하는 최소한의 비용을 보상하는 수준에서 가격을 정하고 수원을 확보하는 데 드는 비용은 반영하지 않았다. 수돗물 생산원가는 1㎥당 849.3원(2013년 기준)이다. 수돗물값이 생산원가보다 낮은 셈이다.

그러나 수도세 인상에 대해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물 사용량이 상수도요금에 반비례 하는 만큼 수도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주장과 물 사용에 대한 인식전환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1인당 물 사용량은 상수도요금에 반비례한다”며 “수돗물값을 원가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태관 교수는 “물 낭비는 돈보다 가치관의 문제로 봐야 한다”며 “수도요금을 올리면 쓰레기종량제 도입 때처럼 일시적인 효과를 볼 수는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짧은 시간 안에 단기효과를 보려고 하지 말고 오랫동안 시간을 두고 물의 소중함과 물을 아껴 써야 한다는 인식을 정부가 국민에게 심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 우리나라는 왜 물부족 국가일까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어떤 근거로 물 부족 국가가 된 것일까. 1인당 재생가능 수자원 양이 1488㎥로 국제인구활동연구소(PAI) 기준인 1700㎥ 이상(물 풍요국가 기준)에 미달했기 때문이다.

한국수자원공사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에 한해 동안 유입되는 물의 양은 총 1240억㎥.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2%(517억㎥)는 증발하고 나머지 58%(723억㎥)만 하천으로 흘러간다. 하천으로 흐르는 물 중에서도 31%(386억㎥)는 바다로, 나머지 27%(337억㎥)가 생활에 이용된다. 이 중 생활용수로 쓰이는 물은 23%인 76억㎥ 수준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농업용수 23%(76억㎥) ▲하천유지용수 22%(75억㎥) ▲공업용수 8%(26억㎥) 등으로 쓰인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