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움직임은 초미의 관심사다. 수십 수백 개의 계열사와 협력사를 거느린 만큼 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 대기업이 사옥을 이전한다면 어떨까. 부지 매입과 건설 비용으로 수천억원에서 수십조원의 자금이 오가며 실로 엄청난 경제적 파급효과를 일으킨다. 선거철만 되면 대기업 유치가 정치권 핵심공약으로 떠오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올해는 유독 다수의 대기업이 사옥이전을 준비하고 나섰다. 현대자동차그룹이 2020년 이전을 목표로 옛 한국전력공사 부지인 강남구 삼성동에 통합사옥을 건립 중이고 롯데그룹도 소공동에서 내년 말 잠실 롯데월드타워로 본사를 이전할 계획이다. 청계천로에 본사를 둔 아모레퍼시픽도 용산에 통합 신사옥을 짓고 있다.



/사진제공 = 롯데그룹

◆기업가치 높이고 랜드마크로


대기업의 사옥이전은 여러가지 면에서 의미가 있다. 분산된 계열사를 통합해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그룹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조성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이 대표적. 그리고 그 이면에는 그룹 오너의 열망도 담겨 있다.

현대차그룹이 대표적인 예다. 양재동 현대차그룹 사옥의 수용인원은 5000명 안팎. 30개 계열사 1만8000명이 근무하는 공간치곤 비좁다. 이로 인해 계열사들이 이곳저곳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다.

때마침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가 매물로 나오자 현대차그룹은 적극적으로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10조550억원을 제시해 부지 낙찰에 성공했다. 이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사옥 확장에 대한 열망이 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자동차 업계 5위다. 정 회장은 글로벌 기업에 걸맞은 사옥을 보유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독일의 BMW나 벤츠, 폭스바겐은 물론 일본의 토요타와 같은 본사 사옥을 보유하고 싶어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그룹 위상에 걸맞은 컨트롤 타워를 보유하는 것은 경영진의 오랜 숙원"이라며 "한전부지 매입을 통해 그 소원을 풀게 됐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한전 삼성동 부지에 526m 높이의 초고층 빌딩을 세울 계획이다. 그룹 통합 사옥은 물론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GBC)를 건립한다. 또 삼성동 일대를 복합 자동차 테마 파크로 조성해 명실상부한 서울의 랜드마크로 육성한다는 것이 현대차그룹의 청사진이다.

롯데그룹 본사가 이전할 잠실 롯데월드타워도 마천루를 세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만들고 싶다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염원이 담겼다. 롯데월드타워는 높이 555m, 123층짜리 초고층타워로 짓는데 현재 국내 최초로 100층을 돌파했다.

롯데월드타워는 공사 진행 과정에서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이 건물을 짓기 위해 성남공항이 활주로 변경공사를 했고 안전부주의로 인명사고도 발생했다. 또 수족관과 영화관이 개장 직후 안전 논란에 부딪혀 장기 휴업에 들어가기도 했다. 롯데월드타워로 주변 아파트값이 떨어졌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숱한 논란 속에서도 롯데월드타워는 내년 말 123층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이어져 현재 113층을 올린 상태다.

현재 청계천 인근의 시그니처타워를 임대해 쓰고 있는 아모레퍼시픽은 '용산 2.0 시대'를 준비 중이다. 5200억원을 투자해 기존 본사를 허물고 신사옥 신축을 준비하고 있는 것. 신사옥은 지상 22층, 지하 7층 규모로 짓게 된다. 총 면적 12만3450㎡ 규모, 신사옥 부지면적만 1만4523㎡에 달한다.

용산은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역사와 함께하는 장소로 통한다. 고 서성환 창업주가 1956년 공장을 이전하며 터를 잡은 곳이 용산이다. 신사옥을 짓고 있는 현 건물은 고 서 창업주가 1976년 세운 건물이다. 당시 용산의 랜드마크 고층건물로서 고속성장하는 아모레퍼시픽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담았다.


/사진제공 = 아모레퍼시픽

/사진제공 = 서울시

◆내집 팔고 셋방 사는 기업들
대기업의 본사는 그룹 흥망성쇠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 통합 사옥을 통해 그룹의 건재함을 대내외에 알리는가 하면 본사를 매각하거나 외곽으로 밀려나는 경우도 있다.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간 동국제강은 회사의 상징이자 본사 사옥인 페럼타워를 지난 4월 삼성생명에 매각했다. 공시된 페럼타워의 매각금액은 4200억원. 페럼타워는 동국제강이 34년간 본사로 사용한 서울 수하동 사옥을 지난 2007년부터 재건축해 2010년 완공한 건물이다. 공사비만 1400억원이 투입됐다. 동국제강은 그동안 본사 매각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 악재와 값싼 중국산 철강이 대거 유입되면서 동국제강은 경영난에 시달렸다. 설상가상 그룹 수장인 장세주 전 회장이 구속되면서 위기감을 높였다.

두산건설과 오리콤 등 두산그룹 계열사 5개 본사도 성남으로 이전을 꾀하고 있다. 강남 논현동 사옥을 1440억원에 매각한 뒤 최장 15년간 임차하는 ‘세일앤리스백’ 조건으로 셋방살이에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다. 두산의 주력 계열사인 두산건설은 부동산경기 침체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상태다. 두산건설의 올 2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64% 감소한 110억원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매출액은 4381억원으로 21% 감소했으며 당기순익은 437억원으로 83% 줄었다.

GS건설도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의 GS역전타워 사옥을 1700억원에 매각하고 종로 청진동 그랑서울오피스를 임대해 사용 중이며 SK건설도 지난 2009년 서울 종로구 관훈동 사옥을 1060억원에 매각한 뒤 세입자로 전락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