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 하면서도 보게 된다는 막장 드라마. 안 보면 보고 싶고 보고나면 찜찜한 막장 드라마에 절대 빠질 수 없는 요소가 있다. 바로 재벌가와 경영권 다툼. 재계 순위 5위, 롯데그룹 꼭대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근 상황도 이러한 막장 드라마 몇몇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전격전’으로 그룹 경영권을 장악했던 동생에 맞서 반격에 나선 형. 그리고 아버지의 격노.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이어진 전쟁은 이번엔 ‘롯데호텔 34층’에서 벌어졌다.

/사진=임한별 기자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집무실이자 거주지가 있던 비밀스러운 공간. 그동안 조용하기만 하던 이곳이 때 아닌 혈투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신 총괄회장의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34층 집무실 관할권’을 놓고 충돌을 벌이고 있는 것.
◆ 한지붕 두가족…나가 vs 못 나가

양측의 싸움은 신 전 부회장 측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됐다. 신 전 부회장이 한국에 설립한 SDJ코퍼레이션은 지난 16일 오전 12시경 “34층 집무실 주변에 배치한 롯데 직원들을 해산하고 CCTV를 철거할 것” 등의 요구안과 신 총괄회장의 친필 서명이 담긴 통고서를 롯데 측에 전달했다. 그 과정에서 SDJ코퍼레이션 측과 롯데그룹 간에 낯뜨거운 설전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이번엔 철저히 출입이 통제됐던 34층의 문이 열렸다. 신 전 부회장 측에서 언론사 인터뷰를 진행한 것. 이 자리에서 신 총괄회장은 장남의 롯데그룹 경영을 지지한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신 총괄회장은 “후계자는 장남”이며, 건강상태를 묻는 질문에서도 “좋다”고 답했다.

그동안 신 총괄회장의 온전치 못한 건강 상태를 직간접적으로 언급해 온 롯데그룹 측은 같은 날 오후 긴급 기자설명회를 열고 “신 총괄회장의 장남 지지발언은 진위 절차가 필요하다”며 “상대방의 통고서도 법적인 문제를 짚을 것”이라고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이날부터 신 전 부회장은 34층 집무실을 드나들 수 있는 마스터키를 확보했고, 자신의 회사 직원들을 신 총괄회장 곁에 상주시켰다. 34층의 공동 관리자가 2명, 비서실도 2곳이 존재하는 ‘한지붕 두 가족’ 형태가 된 셈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난 19일엔 ‘아버지 쟁탈전’이 벌어졌다. 신 전 부회장이 신 총괄회장을 데리고 비밀 외출에 나선 것을 두고 그룹의 반발이 더욱 심화된 것. 특히 그룹이 신 총괄회장의 비서실장으로 임명한 이일민 전무를 해임하고, 신 전 부회장 측이 계열사 업무보고에까지 관여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양측의 긴장감은 더 팽팽해졌다.

참다못한 롯데그룹은 다음날인 20일, 34층에 상주하는 외부인들에게 퇴거를 요구했다. 롯데그룹은 자신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민형사상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강수도 뒀다.신 전 부회장 측 역시 “퇴거 명령”에 즉각 반박하며 “이는 총괄회장이자 롯데그룹의 창업주에 대한 정면반박이며 무책임한 태도”라고 비난했다.

양측은 이처럼 34층 집무실을 둘러싸고 대치하고 있는 상황. 또 신 전 부회장이 지난 21일~22일 양일간 언론사를 순방하며 신 회장에 대한 공격을 가하면서 둘의 갈등은 경영실패 폭로전으로까지 번졌다. 두 사람이 모두 상대방이 독단적인 투자로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향후 갈등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게됐다.

◆ 아버지도 가세…끝 모를 분쟁 속으로

롯데가에 경영권 분쟁 불씨가 붙은 것은 지난해 말. 신 전 부회장이 주요 직위에서 해임되면서 부터다. 당시 롯데 경영권은 신 회장의 ‘원톱’ 체제로 흘러가는 듯 보였으나 지난 7월 말 신 총괄회장이 신 전 부회장과 함께 일본롯데홀딩스를 방문, 신 회장을 포함한 일본롯데홀딩스 이사 6명을 해임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400여개에 달하는 롯데그룹의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와, 황제경영, 국적논란까지 드러나며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다. ‘1차의 난’은 지난 8월, 신 회장의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 승리로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신 전 부회장이 이달부터 전방위적 공세에 나서면서 경영권 분쟁은 2라운드로 재점화된 분위기. 이번에는 93세인 고령의 아버지까지 직접 나섰다. 막장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끝 모를 전쟁. 실존 재벌들이 출연한 롯데가의 드라마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