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민주화항쟁의 과정을 담은 영화 ‘1987’이 연일 인기를 얻으면서 관련 인물들도 덩달아 조명받고 있다.
특히 영화에 등장하는 고문경찰의 가혹함은 관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였다. 일명 ‘박처원 사단’으로 불리는 고문 팀은 실제를 모티브로 했기에 실존인물들의 근황에 관심이 집중된다.
‘박처원 사단’의 이근안이 대표적인 실존인물이다. 1999년 10여년 간의 도피생활을 끝내고 자수한 그는 군사정권 시절 악명 높은 고문형사였다. 전기고문, 물고문, 날개 꺾기 등 끔찍한 기술로 학생운동가와 민주화운동가 등을 가혹하게 고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9년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제 발로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나타났다. 10년 10개월간 집과 은신처를 떠도는 도피생활을 끝내고 자수한 것이다.
이근안은 김근태 당시 민청학련 의장을 고문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1985년 남영동 대공분실로 김 전 의장에 10여 차례 악독한 고문을 행했는데 김 전 의장이 당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고 회고할 정도였다.
1988년 경기도경찰청 공안분실장이었던 이근안은 불법체포와 고문을 자행했던 사실이 밝혀지자 경찰에서 사퇴했다. 같은 해 12월24일 김근태 당시 국민회의 의원을 고문하고 납북어부 김성학씨를 감금한 혐의로 지명수배됐다.
이후 10여년간 도피생활을 하다가 자수한 이근안은 1999년 11월 불법감금 및 독직가혹행위죄로 구속기소돼 2000년 9월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형을 선고받았다.
교도소에 있는 동안 이근안은 고문 피해자인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에게 사과했지만 김 전 상임 고문은 진심이 아닌 것 같다고 회고했다.
2006년 만기출소한 이근안은 목사로 새출발했다. 수감생활 중 신학교에 입학했다가 2008년 10월 대한예수교장로회 한 분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목회 활동 중 그는 "고문도 하나의 예술"이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2011년 12월 김근태 전 상임고문이 사망했지만 이근안은 빈소를 찾지 않았다. 이때 기독교계를 포함해 그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졌고 이씨가 속한 교단은 이듬해 1월 그의 목사직을 박탈했다.
이후 이근안은 본인의 행위를 반성하는 자서전을 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날을 회개한다면서 세월이 지나고 정치형태가 바뀌니 애국으로 한 일이 역적이 됐다며 변명으로 일관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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