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조종사노동조합이 3년만에 사측과 임금협상에 성공했지만 아직 불씨를 남겨뒀다.
조종사 노조는 지난달 26일 노사 잠정합의안에 대해 진행한 찬반투표를 가결시켰다. 총 조합원 1045명 중 713명이 참여해 392명(54.98%)이 찬성했다. 이로써 대한항공과 조종사 노조는 27개월만에 2015년과 2016년 임단협을 마쳤다.
노사는 앞서 지난달 10일 진행된 협상에서 2015년 임금 총액 1.9% 인상, 2016년 임금 총액 3.2% 인상 등을 골자로 하는 안에 잠정합의했다. ▲보안수당 5000원 인상 ▲공항대기 중에도 국내선체류잡비 지급 ▲야간지상근무에 야간근무수당 지급 ▲임협과정에서 발생한 고소고발 취하 등 일부 조합의 요구가 포함됐지만 전체적인 골격은 일반직 직원과 동일하다. 사실상 사측 제시안에 가까운 방향으로 임협이 타결된 것.
◆3년 밀린 임협 27개월만에 해결
2015년부터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는 사측과 첨예한 갈등을 빚어왔다. 이는 전세계 항공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다. 2000년대 후반부터 저비용항공사(LCC)의 성장으로 기존의 풀서비스항공사(FSC)는 상당한 먹거리를 뺏기며 성장에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고연봉자로 분류되는 조종사의 임금 인상에 대해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이와 반대로 공급이 한정됐던 비행기 조종사의 몸값은 치솟고 있다. 세계 각곳의 항공사가 국적에 관계없이 조종사 스카웃 전쟁을 펼치고 있다. 일부 해외 LCC의 경우 국내 항공사가 주는 급여의 두 배 이상을 지급하며 무차별적으로 조종사를 영입한다. 업계의 평균 임금이 급격히 오름에 따라 국내 FSC 조종사들의 임금인상요구도 커졌고 결국 사측과의 임금협상에서 접점을 찾기는 어려워졌다.
하지만 대한항공 노사가 유달리 더 큰 진통을 겪은 이유는 다른데서 찾을 수 있다. 2014년 말 조현아 전 부사장의 램프리턴을 비롯해 오너 일가의 비위에 대한 반발이 방아쇠를 당겼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2016년 이규남 위원장 취임 이후 노사갈등은 더욱 심화됐다. 노조가 초기 ‘조양호 회장의 임금인상률’로 알려졌던 37%의 임금인상을 요구했던 것도 오너일가에 대한 비판의 측면이 강하다.
노사 갈등은 오너일가와 조종사노조간 자존심싸움처럼 번지기도 했다. 조종사노조원들은 가방에 오너일가를 비판하는 배너를 붙였고 조양호 회장은 SNS를 통해 조종사 업무가 자동차 운전보다 쉽다고 발언하는 등 감정의 골을 키웠다. 노사갈등은 노조가 조 회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고 회사 측은 준법투쟁을 벌이던 이규남 위원장에게 부기장 강등이라는 중징계를 내리며 극단으로 치달았다.
지난해 추석 성수기까지만 해도 파업을 놓고 줄다리기를 할 정도로 첨예했던 양 측의 갈등은 올해 들어 거짓말처럼 완화됐다. 노조 집행부 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다. 지난해 11월 노조위원장에 당선돼 올해부터 노조를 이끌고 있는 김성기 위원장은 이 전 위원장에 비해 온건한 노선을 취하고 있다. 이와 함께 취임 1년을 맞은 조원태 사장이 적극적인 소통행보를 보인 것도 해빙무드 전환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T2 이전, 노사갈등 새 방아쇠 되나
하지만 조종사노조의 임단협이 끝난 것은 아니다. 지난해 협상이 남아있고 올해 협상도 진행해야 한다. 2015년과 2016년 임단협 타결은 사실 상징적인 의미에 불과하다.
김 위원장은 최근 잠정합의안 찬반투표가 이뤄진 후 조합원들에게 “위원장 스스로도 만족스럽지 않은 안으로 잠정합의를 하고 총회에 올린 것은 꽉 막혀 있던 소강상태를 벗어나 새로운 전진을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온건적이란 평가를 받는 집행부지만 2017년과 올해 협상에선 크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특히 최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T2) 개장 이후 조종사들의 불만은 새로운 이슈로 집중되고 있다. 조종사 노조는 현재 T2 이전에 따른 노조원들의 불이익 사례를 수집하는 중이다. 이와 관련한 요구가 지난해와 올해 임단협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현재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통합운영센터 이동의 불편사항이다. 대한항공 조종사들은 운항을 하기 전 회사가 운영하는 통합운영센터(IOC)에서 객실승무원과 합동브리핑을 실시한 뒤 여객기로 이동한다. 대한항공은 제2여객터미널에 새롭게 입주했지만, IOC는 1터미널(1T)에서 가까운 인하국제의료센터에 위치해 있다.
조종사노조에 따르면 IOC는 1T에선 직선거리로 2km 남짓 떨어져있기 때문에 기존에는 셔틀버스로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2T로 이동하기 위해선 셔틀버스를 타고 20분 이상 이동해야 한다. 또 셔틀버스를 1T와 2T에 나누다보니 운행간격도 늘어나 실제 걸리는 시간은 30분 이상이다.
노조 관계자는 “이동하는 시간을 계산해보면 허술한 브리핑을 감수하면서 준비를 서두르거나 비행기를 지연시킬 수 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이는 모두 항공안전과 승객편의를 그르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문제로 노조 집행부는 현재 T2 이동으로 인해 출발 준비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 항공기에서 진행하는 십사이드브리핑(Shipside briefing)을 하라고 권장한다.
노조 내부에선 왜 IOC가 인하국제의료센터에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나온다. 앞서 인하국제의료센터가 세워지기 이전까지만 해도 대한항공은 1T에 브리핑실을 갖추고 이용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인하국제의료센터가 한진그룹 계열사들이 투자해 만든 건물이라는 점에서 다양한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인하국제의료센터는 지난 2012년 정석인하학원과 대한항공, 한국공항, 정석기업 등 한진그룹 계열사들이 투자해 만들었다.
결국 노조는 앞으로 단협을 통해 IOC 이전 등을 적극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노조 한 관계자는 “현재 노조 집행부의 온건 노선에 대해 노조원들의 불만이 커지는 상황”이라며 “T2 이전으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집행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설합본호(제526호·제52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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