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인생’을 사계절에 빗댄 아카펠라 팀 ‘나린’의 자작곡 <봄비에서 눈꽃까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혼성 4부(테너·베이스·소프라노·알토)와 퍼커션(비트박스) 파트 등 5명으로 구성된 나린은 팀 결성 1년2개월 만인 지난해 8월 이 노랫말로 홍콩 국제 아카펠라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 노랫말을 만든 이는 나린의 테너 김종하씨(29)다. 그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가 뭘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했다”며 “이후 어머니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카펠라는 오로지 사람 목소리로만 구성된다. 다른 장르보다 노래하는 이의 감정을 청중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 있다”며 “따뜻한 노래를 만들어 아카펠라를 통해 대중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진심 담은 가사로 국제대회 우승
지난달 27일 만난 김씨는 미국 아칸소주에서 열리는 아카펠라 대회 ‘보이스 잼 페스티벌’ 초청 공연을 일주일 앞두고 연습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아카펠라에 발을 내디딘 지 2년도 채 안됐지만 그는 자신이 설 무대를 전 세계로 확장한 상태였다.
계기가 된 건 지난해 8월 홍콩에서 열린 ‘보컬 아시아 페스티벌’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아카펠라 대회로 김씨가 속한 팀 나린은 지난해 우승을 차지했다. 2016년 이 대회 1·2위팀은 이듬해 세계 최고 아카펠라 대회인 ‘보컬 토탈’에서 각각 재즈(전통방식 아카펠라)부문과 팝(현대방식)부문 왕좌에 오르기도 했다. 나린이 미국 공연 초청을 받은 것도 이 대회 우승 특전이다.
나린에서 테너 파트를 담당하는 김씨는 작사도 맡고 있다. 아카펠라는 듣는 이가 적어 자작곡이 알려지는 경우가 흔치 않아 대개 인기 있는 기존의 노래를 편곡한다. 그럼에도 김씨가 작사에 집중하는 건 좋은 노랫말에서 좋은 음악이 나온다는 생각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노래를 들을 때 가사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노래는 가사에 음을 실어서 전달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음악을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 노래 부를 때 제 감정을 듣는 분들에게까지 전달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런데 제가 직접 가사를 쓰면 제 본연의 감정을 보다 잘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제가 만든 노랫말로 많은 분들이 가끔은 위로 받고 힘을 낼 수 있었으면 합니다.”
홍콩 대회에서 선보인 <봄비에서 눈꽃까지>는 김씨가 작사한 첫번째 곡이다. 미국 공연을 마친 후 그는 아버지와 산타를 엮어 두번째 곡을 만들 계획이다. “캐롤을 만들 생각이에요. 그런데 잔잔하거나 밝은 분위기의 캐롤은 아니에요. 어릴 땐 누구나 산타가 존재한다고 믿죠. 어느 순간 산타는 부모님이라는 걸 깨닫게 되고요. 산타 얘기를 하며 아버지를 그리려 해요.”
◆사람을 중시하는 아카펠라의 매력
김씨가 아카펠라를 시작한 건 우연이었다. 회사에 취직해야 할지, 음악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한 선배로부터 나린을 소개받았다. 김씨가 합류하고 나린은 완성체가 됐다. 아카펠라를 처음 접했지만 그는 “아카펠라를 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삶의 주인공은 자신입니다. 특히 노래하는 사람은 무대에서 더더욱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아카펠라를 하면 절대 그래선 안돼요. 내가 빛날 때와 뒤에서 받쳐줘야 할 때를 알아야 해요. 빛을 나눌 때 완성되는 순간이 아름다워요. 겸손하게 되죠. 나중에 다른 개인 활동을 하더라도 아카펠라를 본업으로 삼을 거예요.”
아카펠라엔 사람 목소리만 담긴다. 아카펠라 공연 시 필요한 유일한 전자음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뿐이다. 피아노·기타·드럼과 같은 기계·전자음도 필요 없다. 한명이 노래를 부르면 나머지는 모두 악기가 된다. ‘사람 악기’다. 그런 면에서 아카펠라는 사람을 중시하는 장르다. 만약 반주를 악기나 전자음으로 처리한다면 효율성과 편의성은 오르겠지만 노래를 부르지 않고 비트박스로 리듬만 넣는 퍼커션 파트는 팀을 떠나야 한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면 아카펠라는 못할 거 같아요. 아카펠라에선 모두가 주인공이에요. 누구 하나 대체할 수 없어요. 대체한다는 건 악기를 놓고 하는 말이죠. 사람은 대체물의 대상이 아니에요. 보통 팀에서 노래를 제일 많이 부르는 사람이 리더인데 저희는 퍼커션이 리더이기도 해요.”
국내 아카펠라시장은 굉장히 작다. 대중들이 아는 아카펠라 팀이 거의 없다는 게 이를 방증한다. 아카펠라 수요가 많지 않아 돈벌이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나린이 지난해 11월 첫 싱글앨범을 발매한 것도 재능 있는 뮤지션을 발굴하는 ‘좋은 음악 만들기 프로젝트’를 통해서였다. 하지만 김씨는 큰 걱정이 없다.
“아카펠라를 듣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이상하게 공연은 꽤 잡혀요.(웃음) 지금 공연당 페이가 150만원가량인데 멤버가 5명이니 한달에 5번만 공연하면 그 정도를 벌 수 있어요. 지금은 샌드위치 가게에서 점주님 후원도 받으며 1년 이상 일하고 있는데요. 갈 길이 아직 멀지만 ‘이 정도라면 먹고 살 수 있잖아’라는 기준으로 보면 돈과 관련된 허들은 생각보다 낮은 것 같아요.”
그는 겸손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초심을 잃지 않고 따뜻한 음악을 전하는 게 목표다. “저는 제가 쉽게 자만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훗날 조금 또는 많이 유명해지더라도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는 사람으로 사람들에게 남고 싶어요.”
☞ 본 기사는 <머니S> 제534호(2018년 4월4~1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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