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적 합의에서 원점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 리치필드에서 열린 인프라 계획 관련 행사에 참석해 “우리는 FTA 협상을 북한과의 협상이 끝날 때까지 미룰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양국 통상담당자가 “원칙적 합의를 도출했다”고 밝힌 지 사흘만의 입장 선회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를 어떻게 북핵 협상과 연계하려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북핵 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지지를 대가로 한국 측에 기존 한미 FTA 개정 협상의 ‘원칙적 합의’보다 더 나아간 대대적인 양보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환율합의에 관한 논란도 거세다. 한미FTA 협상을 담당한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 선회 발표 하루 전 한미 FTA 개정 협상 성과 중 하나로 ‘환율 합의’를 꼽았다. 무역과 투자의 공평한 경쟁의 장을 촉진하기 위해 경쟁적 평가절하와 환율조작을 금지하는 확고한 조항에 대한 합의(양해각서)를 했다는 것.
이는 앞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달 26일 한미 FTA 개정 협상 결과 브리핑에서 언급하지 않은 내용이다. 미국 측이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하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환율에 대한 ‘이면합의’ 해놓고 숨긴 게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졌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한미FTA와 환율은 별도의 협상이라며 미국 정부에 한미FTA 결과 발표과정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킨 데 대해 강력히 항의했다고 선을 그었다. 기획재정부는 “한미 FTA와 환율 문제는 절대 연결되지 않는다”며 “환율 관련 협의는 기재부와 미 재무부 차원에서 별도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현종 본부장도 “환율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철강 관세 및 한·미 FTA 개정 협상과는 별도로 진행 중인 내용이기 때문에 발표하지 않았다”며 “라이트하이저 대표 역시 한국과의 철강 및 FTA 합의는 환율 문제와는 독립된 사안이라고 분명히 말했다”고 강조했다.
◆‘레드라인’ 농산물도 추가개방 압박
이런 가운데 미국은 우리나라가 ‘레드라인’으로 사수했던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을 문제를 거론하고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USTR은 최근 발간한 ‘국별 무역장벽 보고서’에서 미국산 과일에 대한 한국 시장 접근 문제를 언급했다. USTR은 “현재 수입이 금지된 사과와 배에 대한 시장 접근도 요청했고 이들 과일 수입 허용을 위해 계속 한국을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농산물은 우리나라가 철강을 내주는 대신 끝까지 사수하려 했던 분야다. 앞서 김현종 본부장은 한미 FTA 개정 협상 결과 브리핑에서 “미국이 협상 과정에서 농축산물 시장 추가 개방을 강력히 요구했지만 방어에 성공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미국 측이 농산물 분야도 압박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트럼프 대통령이 개정 협상을 북핵 협상 이후로 연기할 가능성을 시사함에 따라 또 다시 이 문제가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협상에서 우리 측이 사수한 분야가 원점에서 재검토될 위험이 높아진 셈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한미 FTA 개정 협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후보시절 대표적인 공약사항으로 애초부터 정치적 문제였다”며 “미국 행정부 입장에서는 공약 이행에 대한 자국 내 긍정적인 평가를 얻기 위해 최대한 성과를 부풀리려 할텐데 우리 정부가 너무 섣불리 (협상이) 끝났다고 선언을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처음부터 자동차와 농산물 개방을 요구했던 미국이 자동차에서만 일부 입장을 관철시켜놓고 합의를 끝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며 “국가와 국가간 통상문제에서 일방적으로 이기는 협상은 없으니 최대한 프로페셔널한 자세로 대화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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