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월 LG CI 선포식을 마친 뒤 당시 구자경 회장(왼쪽 세 번째)과 구본무 부회장(왼쪽 첫 번째)이 LG트윈타워 표지석 제막식을 하고 있다. / 사진=LG

“제가 꿈꾸는 LG는 모름지기 세계 초우량을 추구하는 회사입니다. 남이 하지 않는 것에 과감히 도전해서 최고를 성취해야 하겠습니다.”
20일 별세한 구본무 LG 회장이 1995년 LG 회장으로 취임하며 던진 일성이다. 구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사업구조 재편으로 ‘초우량 LG’를 구축하겠다고 천명한대로 제 2의 경영혁신을 강도 높게 추진했다.

‘경영환경이 어려울 때 선제적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미래 성장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구 회장의 평소 지론에 따라 그룹의 성장을 주도해나갈 사업으로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 3대 핵심 사업군을 집중 육성해 LG를 글로벌기업으로 키웠다.


그 과정에서 핵심·원천기술을 개발하고 해외시장을 적극 개척함으로써 국가 차원의 산업경쟁력 견인과 경제 발전에도 기여했다.

특히 가전, 기초소재 등 전자와 화학 분야의 주력사업을 세계 최고로 키운다는 목표로 선제적인 투자와 역량을 집중해 흔들림 없이 탄탄히 글로벌시장을 선도하는 사업으로 이끌었다.

가전사업은 명실상부 글로벌 프리미엄브랜드로 자리매김했으며 석유화학의 기초소재사업도 고부가 제품 개발을 통해 든든한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사업으로 안착했다.


구 회장은 사업에 있어서 중도 포기하지 않는 ‘집념의 승부사’였다. ‘어떤 사업 분야에서도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면 그 과정이 어렵고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중도에 포기하거나 단기 성과에 급급해하지 않고 부단히 도전해 결국에는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경영철학 중 하나였다.

구 회장의 ‘집념의 승부사’와 같은 면모는 ▲부회장 시절부터 끈기 있게 개척한 이차전지사업 ▲단호한 결단으로 키운 OLED TV 등 디스플레이사업 ▲통신사업으로의 과감한 진출 등에서 잘 나타난다.

구 회장은 1990년대 초반 국내에서 불모지나 다름없던 이차전지사업에 과감히 뛰어들어 20년 넘게 끈기 있게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 현재 LG의 핵심 성장사업이자 글로벌시장을 선도하는 사업으로 키워냈다.

또한 디스플레이사업 육성을 과감히 결단, 대형 LCD 글로벌 1위에 이어 해외업체들도 포기했던 OLED TV를 첫 양산하는 등 글로벌 차세대 디스플레이사업을 리드했다.

아울러 1996년 통신사업에 진출해 전자-화학-통신서비스 포트폴리오 구축 계기를 만들고 LTE에 이어 사물인터넷(IoT) 분야에 과감한 투자 결정으로 통신시장의 판을 바꿨다.

승부사적 기잘은 외환위기 때도 빛을 발했다. 구 회장이 취임 후 3년이 채 안된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국내 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는 심각한 경영위기를 맞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구 회장은 경영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 기업의 체질을 탄탄히 하겠다는 목표로 재무구조개선작업에 착수하고 외자유치와 적극적인 기업공개(IPO)에 나섰다.

이에 따라 당시 LG텔레콤이 영국의 BT로부터 4억달러의 외자유치를 성공한 데 이어 여러 계열사에서 다우케미컬, 칼텍스, 골드만삭스, 독일재건은행 등 해외 우량기업 및 금융기관들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당시 국내 대기업집단으로는 최다금액인 67억달러의 대규모 외자유치에 성공했다.

또한 LG생활건강, LG텔레콤 등 7개 우량계열사가 상장되며 주력기업 대부분이 직접 금융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고 경영전반에 걸쳐 주주가치를 극대화해 경영투명성을 높일 수 있었다.

구 회장은 ‘영속기업 LG’를 향한 해답을 R&D와 인재에서 찾았다. LG는 지속적으로 R&D 투자를 늘려오면서 지난해에는 그룹 전체 약 6조9000억원을 R&D에 투자했고 연구개발 인력도 꾸준히 확보함에 따라 지난해 말 기준 R&D 인력이 약 3만3000여명에 이른다.

특히 서울 마곡산업단지에 4조원을 투자해 축구장 24개 크기인 17만여㎡ 부지, 연면적 111만여㎡, 연구시설 20개 동으로 이뤄진 국내 최대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 ‘LG사이언스파크’를 건립하는 등 LG R&D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