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두번째)은 지난 6일 경기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방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등 삼성 경영진과 간담회를 갖고 바이오분야의 규제개혁 요청을 수용했다. / 뉴시스=최동준 기자
“지난 4년간 각종 포럼과 발표회 등을 통해 40번 가까이 규제개혁 과제를 말씀드렸다. 그런데 상당수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어 기업들이 체감하지 못한다.” 


지난 6월,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을 만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이렇게 직언했다. 정부가 매번 ‘혁신성장’을 외치지만 정작 혁신의 주체가 돼야 할 기업은 각종 규제에 얽매여 제대로 투자하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의 변화가 감지된다. 지난 1년간 ‘소득주의 성장’을 내세우며 기업의 경영부담을 늘려온 정부가 기업의 투자 활성화를 위한 여건 마련에 나섰다. 가장 먼저 수술대에 오른 것은 ‘규제’다. 정부는 경제성장과 일자리 확대를 가로막는 규제에 과감히 매스를 들이대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방침이다.

◆규제개혁 나선 정부


지난 6일 휴가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한 문재인 대통령은 첫 업무지시로 ‘규제개혁’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기업활동이 활발해지고 중산층과 서민들의 소득이 높아져야 경제가 활력을 찾을 수 있다”며 “우선 신산업과 일자리창출을 가로막는 규제부터 과감히 혁신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민간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이 규제의 벽을 뛰어넘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도록 혁신 친화적 경제환경 조성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주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같은날 김동연 부총리는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생산공장을 찾아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경영진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 부총리는 바이오산업분야의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삼성전자의 요청에 “일부 규제의 경우 전향적으로 해결하고 일부는 관계부처 검토를 거치겠다”고 답변했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삼성과 거리를 둬온 문재인정부의 경제 수장이 해당 기업을 직접 찾아 규제개선 요청을 적극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는 정부가 경제성장과 일자리창출에만 도움이 된다면 어떤 기업의 목소리든 경제정책 수립에 적극 수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당초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을 통해 소득주도 성장을 추진했다. 하지만 ‘J노믹스’의 1년차 성적표가 신통치 않다는 평을 받는다.


올 2분기 실질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7%로 투자·소비·수출 등 주요 항목 대부분에 적신호가 켜졌고, 지난 2월부터 취업자 수 증가폭은 5개월 연속으로 10만명대에 머문 반면 실업자 수는 6개월 연속 100만명대를 기록하는 등 사상 최악의 고용대란이 이어졌다. 특히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경영계의 반발이 커지는 등 사회분열조짐까지 나타나자 정부가 서둘러 정책방향을 수정한 것이란 평가다.

김영한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처음부터 문재인정부가 표방한 경제정책 핵심은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 두가지였다”며 “지금까지는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 성장에 초점을 맞추다가 부작용이 가시화되자 혁신성장으로 정책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경제정책의 전향적인 궤도 수정으로 보긴 어려우나 우선 순위를 조정하는 유연성을 보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네거티브 규제’ 전환 탄력

세계경제포럼(WEF)이 평가한 한국의 정부규제환경은 138개국 중 105위로 독일(18위), 미국(29위), 일본(54위)에 비해 한참 뒤쳐졌다. 또한 OECD가 평가한 외국인 투자규제도 OECD 35개국 중 30위로 투자를 유치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규제환경을 경쟁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게 재계의 요구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일 휴가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해 ‘규제개혁’을 지시했다. / 사진=뉴시스 박진희 기자
특히 재계는 ‘포지티브’ 방식이 아닌 ‘네거티브’ 규제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촉구한다. 네거티브 규제는 법률이나 정책에서 금지한 행위가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규제 방식을 말한다. 지금까지는 허용된 것 외에는 모두 금지하는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로 인해 신사업 분야는 진입이 어려웠다. 이 때문에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수차례 정부관계자들을 상대로 “이번 정부에서만큼은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필요한 경우에만 간섭하는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이 반드시 있었으면 한다”고 촉구해왔다.
이와 관련 정부는 지난달 의료기기 분야에 처음으로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안전성 우려가 적은 의료기기의 장벽을 낮춰 시장의 문을 먼저 열고 이후 문제가 발생하면 규제하겠다는 ‘선 시장 진입, 후 평가’ 방식을 도입키로 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신산업 분야의 규제개혁을 우선적으로 언급한 만큼 의료기기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로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확대할 것으로 본다.

김영한 교수는 “과거처럼 ‘규제를 몇건이나 철폐했느냐’에 얽매여 개선 건수에만 집착하는 규제개혁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며 “기존의 규제정책이 시장질서를 교정해주는 정책인지, 아니면 관행적인 것인지 엄격히 구분하는 작업을 선행해 반드시 필요한 규제와 없어도 되는 규제를 선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공공재와 관련된 규제는 시장질서가 교란될 수 있어 절대로 철폐해선 안되는 게 있는 반면 사적시장에 가까운 규제는 근본적으로 철폐해야 한다”며 “경제학적으로 기본적인 원칙에 따라 신중하게 규제개혁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53호(2018년8월15~2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