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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제재로 터키화폐인 리라화가 폭락한 가운데 터키발 금융위기가 신흥국과 유럽으로 번질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터키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높은 유럽계 은행에 위기가 전이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올 들어 터키, 러시아, 이란이 신흥국 가운데 통화가치가 눈에 띄게 하락했다. 특히 터키의 경우 유럽계 은행의 터키에 대한 대출규모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유럽 금융위기를 다시 촉발시킬 수 있는 잠재적인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스페인 은행들이 터키에 대출해준 금액은 833억달러(약 95조원), 프랑스 은행들은 384억달러(약 44조원), 이탈리아 은행들은 170억달러(약 19조원)로 집계됐다. 개별 은행의 익스포저는 공개되지 않았다.

허진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터키는 국가부도 위험을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스프레드도 하루 만에 64bp 급등한 436bps를 기록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 이후 최고치까지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허 연구원은 이어 "터키는 지난해 기준 경상수지 적자가 GDP 대비 약 6%, 민간부문의 외채비율이 GDP 대비 70%에 달하는(BIS 기준) 등 대외 불균형이 크게 악화된 상황이다"면서 "만약 터키의 국가부도 가능성이 높아질 경우 유로존 은행들의 신용공급이 위축되고 이는 일부 취약한 동유럽국가들에게도 연쇄적으로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유럽중앙은행(ECB) 산하 단일은행감독기구(SSM)는 스페인 BBVA, 이탈리아 우니크레디트, 프랑스 BNP파리바 등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은행들의 과도한 터키 익스포저를 우려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하기도 했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터키의 문제는 미국에 맞서기 훨씬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으며 터키의 경상수지는 십수년간 GDP 대비 5%를 넘나드는 심각한 적자에 시달렸다"고 전했다.


이어 "신흥국 통화뿐만 아니라 터키와 관련된 유로화까지 끌어내리며 달러는 저항선을 돌파했다"면서 "주말에 터키 대통령은 새로운 연합을 모색하겠다고 선언하며 채권국인 유로존 발목을 잡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빈 방한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지난 5월 청와대 본관 집현실에서 확대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앞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미국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터키 북동부 바이부르트에서 열린 집권당인 정의개발당 행사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의 제재를 '경제 전쟁'으로 규정하며 "베개 속에 금이나 달러화를 숨겨둔 사람들은 은행에서 리라화와 교환하라"며 "이는 민족과 나라를 위한 전투"라고 밝혔다.
허진욱 연구원은 "비록 유로존 금융시장 불안과 터키발 위기 전염을 막을 수 있는 ECB의 정책수단(양적완화, ELA 등)과 의지에 대한 신뢰가 여전히 높지만 정책대응이 현실화돼 우려가 완화되기까지의 시차를 고려하면 당분간 글로벌 금융시장 내 신흥국에 대한 우려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반면 터키발 금융위기가 2012년 그리스 재정위기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터키는 그리스와 달리 유로존 국가가 아니어서 유로존 전체에 끼치는 영향이 적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상재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스페인 등 유럽 금융기관들은 2012년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부실채권비율을 낮추는 등 금융안정성을 높였다"며 "금융위험이 확산되면 ECB도 개입할 가능성이 높아 그리스 문제가 재현될 정도로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