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방송된 TV조선 '인생다큐-마이웨이'에는 '립스틱 짙게 바르고'의 가수 임주리가 출연했다. 이날 임주리는 가수가 된 사연부터 얘기했다. 그는 "의사였던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그러다보니 사회생활 경험이 없는 어머니가 여러가지 아버지의 일을 이어갔지만 다 실패했다. 성인이 될 때쯤엔 내가 가장이 돼 있더라. '내가 무얼 잘하지'라고 생각해보니 노래였다. 노래대회에서 상금을 받은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고백했다.
임주리는 "그러다 오디션에 합격하고 야간업소에서 노래하는데 가수 함중아가 날 찾아와 '네가 노래를 잘한다는 그 사람이냐? 같이 판을 내자'고 하더라. 따라서 녹음실에 갔는데 내 노래를 듣고 작곡가 김희갑이 이은하를 주려고 작업한 곡을 내게 줬다. 그래서 그 노래로 데뷔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모든 일이 임주리의 마음처럼 흘러간 것은 아니었다. "데뷔 당시 어머니가 가수가 되는 것을 반대했다. 그래서 내가 얼굴 없는 가수로 알려졌다"며 말문을 연 임주리는 "그러다보니 일이 풀리지 않았고 노래는 나랑 안맞는다고 생각하니 우울증까지 앓았다"고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했다.
사랑으로 인한 아픔도 있었다. 임주리는 "친구의 남자친구가 전 남편을 소개해줬다. 미국에서 온 사람이었는데 매력이 있더라. 그리고 그 사람이 시애틀로 가자고 해서 따라갔다"며 "그런데 미국에 가보니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얘기 하더라. 난 당연히 총각인 줄 알았다. 알고보니 부인과 별거 중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뱃속에 아이가 생긴 뒤였다. 아이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키우자는 생각을 했다. 37세란 나이에 정말 힘들게 아이를 혼자 낳았다"고 털어놨다.
임주리는 "그런데 미국에서 키우면 내가 죽을 것 같더라. 아이는 100일이 넘어야 비행기를 탈 수 있다고 하는데, 태어나고 22일 만에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며 "그런데 한국에 오니 방송국에서 날 찾는다고 하더라. 그 사이 '립스틱 짙게 바르고'가 히트를 한 것이었다. 그래서 산후조리도 못하고 방송 활동을 했다. 아들이 나에게는 복덩이였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임주리의 아들은 현재 재하라는 이름의 트로트 가수로 활동 중이다.
임주리의 인생을 바꿔놓은 노래는 바로 '립스틱 짙게 바르고'였다. 그는 "노래를 처음 받는 순간 짜릿한 기분이 들더라. 1987년 발표된 노래인데 입에서 입으로 알려지다가 드라마에 나온 것이 알려지는 기폭제가 됐다"며 "노래의 히트 이후에 전국 립스틱 판매가 급증했다고 하더라. 여자들이 립스틱을 다 짙게 바르다보니…. 화장품 회사에서 나에게 립스틱을 박스로 보냈다. 나는 공연 때마다 립스틱을 뿌리고 다녔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임주리의 아픔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들이 돌 때쯤 전 남편이 한국에 온 것. 임주리는 “전 남편이 매일 술에 취해 살았다. 술을 먹는 것도 그냥 취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자기가 울분을 못 삭혀 뛰쳐나갔다. 그래서 ‘나 힘들게 하려면 앞에서 사라지라’고 했다. 그래서 이혼했다”고 고백했다.
이후 육아와 가수활동을 병행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가 아들의 엄마 역할을 대신해줬다. 그런 어머니가 파킨슨 증후군에 걸린 뒤 9년간 투병생활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효녀 임주리는 아픈 어머니를 정성으로 모셨다. 임주리는 “가슴 속에 한이 맺혔다. 임종을 보지 못했다. 외국 공연 때문에 내가 없을 때 돌아가셨다. 1주일 비웠는데 아주 더웠던 여름에 돌아가셨다”며 눈물을 보였다.
여러가지 아픈 상처를 딛고 아직도 노래하는 임주리는 요즘 트로트 가수로 첫 발을 내딛은 아들 이진호(재하)와 함께 무대에 서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임주리는 “어차피 인생은 후회해도 소용없다. 이 정도면 평균은 살았다는 느낌이다. 앞으로도 건강 챙기면서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엄마가 됐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바람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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