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서울 도심 한복판의 15층짜리 대종빌딩에서 위태로운 신호가 감지됐다. 2층과 4층 사이 건물을 떠받치는 기둥 안쪽 시멘트가 상당부분 떨어져나간 것이다. 입주업체들이 피신하고 현재 CCTV가 건물내부를 감시하고 있지만 여전히 완전통제가 이뤄지지 않았고 경비원과 강남구청 직원들이 현장통제를 위해 근무 중이다.
◆불법시공+행정공백이 세운 위험건물
1991년 준공된 대종빌딩은 1947년 설립한 1세대 건설사 남광토건이 시공했다. 이번 사고로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준공 30년도 안된 건물에 심각한 안전문제가 발생한 점에 의문이 제기됐다.
관할구청인 강남구에 따르면 준공검사 당시 남광토건이 제출한 도면은 2층 이상에 사각기둥을 세우기로 돼있다. 그러나 균열이 발견된 2층 기둥은 원형으로 드러났다. 준공 때 제출한 도면과 실제가 달랐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1989년 건축허가를 받을 때는 2층 이하 전층도 사각기둥을 세우기로 했는데 허가도면, 준공도면, 실제공사가 다 달랐던 것으로 확인됐다.
건축법은 건물 기둥의 모양을 규정하지는 않는다. 기둥의 크기와 단면적이 중요하다. 문제가 된 2층 기둥은 원래 도면대로 하면 대각선 길이가 90㎝짜리 직사각형인데 지름 90㎝의 원형으로 바뀌었다. 콘크리트 양이 15% 줄어든 것이다. 또 피복 두께를 제외하고 철근을 넣어야 하는데 기둥이 원형일 경우 내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즉 하중을 버티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허가도면과 준공도면이 폐기처분돼 어떤 과정을 거쳐 설계변경이 이뤄졌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대종빌딩이 직접 보관 중인 유일한 도면은 허가도면인지 준공도면인지 정확한 확인이 어렵다.
준공검사는 당시 서울시에서 맡았다. 지금은 50층 이상 건물만 서울시가 담당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요즘은 국토교통부 전산망에 전국 모든 허가도면을 입력해 관리하지만 당시에는 지자체가 관리했고 보존기간 10년이 지나면 폐기처분했다”고 설명했다.
1980~1990년대 당시 정부의 신도시 개발로 자재파동이 일어난 점도 문제요인으로 꼽힌다. 건축자재인 시멘트와 철근이 부족해 중국산 시멘트나 바다모래를 가져다 쓰기도 했는데 준공승인 과정에서 확인하지 않았거나 혹은 알고도 눈감아준 것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다.
◆안전점검 얼마나 부실했길래
대종빌딩 부실의혹은 안전점검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테리어업체가 시공 도중 발견해 신고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어처구니없게도 대종빌딩은 올 3월과 10월 안전점검에서 최상등급인 A등급과 B등급을 각각 받았다. 불과 2개월 만에 균열이 발생했고 이후 재점검에서 최하위인 E등급을 받았다.
안전점검은 강남구청 직원과 9명의 건축사가 9일 동안 약 700개 건물을 둘러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안전점검이 아니라 건물탐방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종빌딩은 지난 19일 응급 보강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정밀진단에 앞서 철근이 드러난 기둥 주변에 지지대를 추가로 세워 안전성을 확보하기로 했다. 또 부서진 기둥을 콘크리트 등으로 감싸는 작업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마저 주먹구구식 땜질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부서진 기둥 외에 다른 구조물의 상태도 점검해야 하는데 ‘선수술 후진단’에 급급하다는 지적이다.
◆서울시내 의심건물 몇개?
그렇다면 30년이 지난 지금은 건축수준이 선진화됐을까.
그렇지 않다. 서울 강남의 주택가만 돌아다녀봐도 신축빌라 등이 저마다 크고작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꼭대기층을 불법증축해 옥상계단을 기어올라야 하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진다. 일부 건물 앞에는 ‘불법건축물 철거해달라’며 주민들이 항의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런 불법건축물이 버젓이 생겨나는 이유는 관리감독의 부재 때문이다. 건축주가 허가 받을 당시 토지비용 등을 아끼려고 건축면적을 줄여 제출한 다음 시공 도중 몰래 설계변경하는 등의 수법이 비일비재하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분양자나 세입자가 직접 신고하지 않는 한 증거를 잡아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다. 이같은 불법건축물은 분양현장뿐 아니라 인터넷 블로그나 카페를 통해서도 문제가 드러나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단속할 수 있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서울 내 건축물 4개 가운데 1개는 40년 이상 지난 노후건축물로 조사됐다. 30년 이상인 건물은 25만3705개(39.7%)에 달한다.
대부분이 민간소유라 안전관리를 제대로 받지 않는다. 민간건물 중 15층 이하는 정기 안전점검과 정밀진단을 받을 의무도 없다.
건축학계의 한 교수는 “1980~1990년대 준공한 대표적인 건물 중 하나가 무너진 삼풍백화점인데 당시에는 불법증축, 부실시공이 만연했다. 해당 시기 세운 건물을 전부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도 건축물 유지관리 의무를 강화하기 위한 법안이 지난 8월 발의됐으나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안호영 의원 등이 발의한 ‘건축물 관리법’(가칭)은 건축주가 건물을 짓기 전과 유지보수, 해체 과정의 모든 계획을 수립해 지자체에 제출하도록 한다. 만약 법제정이 빨랐다면 대종빌딩의 안전점검 의무는 건축주 몫이다.
국내 건축기술이 세계로 수출되는 지금은 새 건축물을 짓는 것뿐 아니라 기존 건축물의 안전관리 영역까지 사회적 관심사가 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72호(2018년 12월25~3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 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