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1980년대 후반 군대에서 겪은 일이다. 당시 직업군인들은 월급을 받으면 모 은행의 금융상품인 재형저축을 가입했다. 이자율이 지금보다 훨씬 높은 이유도 있지만 재형저축만큼 똘똘한 재테크 수단이 없었다. 걸출한 히트상품이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시중은행에서 출시한 상품은 다양해졌지만 내로라하는 것을 꼽기가 망설여진다. 한 은행에서 출시하면 다른 은행에서 엇비슷한 상품이 바로 나온다. 카피캣(copycat)시대인 것이다. 고만고만한 상품이 많아 구별이 안되고 차별화도 찾아보기 어렵다. 다른 업종에 비해 변화의 체감이 늦고 고객의 요구와 라이프스타일에 둔감한 것은 아닌지 짚어볼 때다.
그렇지만 최근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2017년 출범한 카카오뱅크의 ‘모임통장’은 초기 흥행에 청신호가 켜졌다. 지난해 12월 출시 이래 한달여 만에 100만구좌를 돌파했다. 모임통장은 시중은행이 10여년 전 출시했지만 ‘실패작’으로 여겨졌다. 카카오톡이라는 모바일플랫폼의 저력을 바탕으로 고객을 이끌어낸 결과다. 시중은행들은 카카오뱅크의 행보에 긴장의 수위가 높아졌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자. 보수적인 금융강국인 영국에서는 몇몇 인터넷전문은행이 메기가 돼 은행을 바꿨다. 메트로뱅크의 뒤를 이어 2015년 이후 생긴 몬조와 레볼루트, 스탈링뱅크 등이 그 주인공이다. 업무처리 속도가 빨라지고 주말은행도 개설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영국 정부가 특정 분야의 규제를 일시적으로 풀어주는 규제 샌드박스제도를 도입해 인터넷은행들이 거대은행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최근 국내에서 들려온 뉴스도 놀라웠다. 삼성이 라이벌 애플과 손잡고 올해 출시하는 스마트TV에서 애플 아이튠즈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다. 급변하는 초연결시대, 비즈니스에 필요하다면 적과도 함께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다. 경쟁할 수 없으면 협업해서라도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국내 은행들의 변신은 반갑다.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으로 도약과 변신에 시동을 거는 국내 은행들은 변신 속도뿐만 아니라 정보통신기술(ICT)기업과 플랫폼 제휴, 차별화된 콘텐츠 발굴에도 힘써야 한다. 그래야 떠나가는 고객의 마음을 다시 얻을 수 있다.
국내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이 일본에서 출간 이틀 만에 아마존재팬 아시아 문학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고 이어 한달 만에 5만부가 판매됐다. 일본 열도까지 달구는 <82년생 김지영>의 소식을 들으며 힘 있는 콘텐츠는 국경도 넘는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1호(2018년 2월26일~3월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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