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금은 사라진 투자신탁회사에 1988년 입사했다. 당시는 투자신탁회사가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을 쥐락펴락하던 시절로 투자신탁회사에서 주식형 상품을 고객에게 팔기 위해 펀드를 설정하면 그 자체가 시장의 호재였다.
믿지 못하겠지만 고객들은 투자신탁에서 상품에 가입하려고 줄을 선 적도 있었다. 투자신탁이 가격설정자(Price Maker)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안타까운 투자신탁의 역사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얘기할 기회를 찾으려 한다)
/사진제공=일러스트레이터 조수연 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가격 맞추기’는 무속의 영역
투자신탁에 입사하자 최고의 기관투자가인 만큼 연수 기회도 많았다. 투자와 관련된 교육과 연수가 주를 이뤘는데 한번은 ‘투자평가사’라는 연수에 참가했다. 지금은 유명무실한 ‘창업투자회사’라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관련 전문 인력이 필요했는데 설립을 검토하는 증권 관련 기관을 포함해 다양한 기관에서 참여했다.
나름 2년 정도 투자관련 분야를 공부하던 때라 자신감이 넘쳤고 그곳에서 투자에 관한 잊혀지지 않는 경험을 했다. 경마(競馬)와 관련된 회사에서 참여한 직원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유명한 외국회사의 주가 추정 모델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경마회사에서도 우승마를 추정하는 모델을 개발 중이라는 것이었다. 말에 대한 상태를 나타내는 몇가지 변수를 넣고 비교하면 우승마가 추정된다는 것이었다. 꽤 승률도 높다고 했다.
가격 추정이란 경제학이나 투자론에만 한정된 것으로 이해하고 공부했던 필자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우승마 추정이라니…. 정통 투자론에서 보면 사이비(似而非)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필자도 안다. 경마는 물론 아무리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가 있는 정통 투자론도 가격은 미래에 속하는 미지(未知)의 영역이라는 것을.
전적으로 필자의 경험에 의한 판단이지만 미래의 가격을 알아낸다는 것은 투자자는 물론 재무·경제·투자 전문가에게 꿈의 영역이다. 노벨 경제학상에서 가격에 관련된 것은 1990년 분산 투자이론의 마코위츠, 샤프, 밀러와 1997년 옵션 방정식에 관한 머튼과 숄즈 정도다. 복잡한 수학, 통계학의 방법론을 활용한 이들의 연구 덕에 현대 투자론과 복합 금융상품의 세계가 열렸다.(노벨 물리학상에서 원자 폭탄이 잉태된 것처럼 당시 노벨 경제학상은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신의 영역’… PER로 가늠해볼까
그러나 이들 이론으로 가격을 추정하기에는 수많은 가정과 인간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통 투자론이 정교해 보이지만 원숭이가 가격을 베팅하는 것보다 객관적인 승률을 확보하지는 못한다는 것도 널리 알려져 있다. 미래에 속하는 가격은 결국 타임머신처럼 인간이 넘볼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필자는 투자에 실패한 경제학자, 투자론 교수의 현실 사례를 들었다. 미디어에 넘쳐나는 족집게 종목 광고들이 무속 광고나 다름없다는 생각이다. 현혹되지 말기 바란다. 필자가 내공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지만 가격은 가격설정자(Price Maker)가 아니면 누구도 알 수 없다. 가격을 알 수 없는 것은 가격추종자(Price Taker)의 숙명이 아닐까.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가격이 높은지 낮은지를 판단해 볼 수는 있다. 절대적인 가격의 추정은 어렵지만 이미 시장에 만들어진 가격들을 비교해 역산하는 방법이다. 언뜻 들으면 주먹구구식으로 볼 수 있지만 이런 비교 측정은 과학적인 방법이다. 물리학에서 나무의 높이를 측정 할 수 없을 때 삼각측량을 이용하는 원리이며 천체과학에서 별의 거리를 빛의 스펙트럼을 이용해 추정하는 것처럼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는 방법 중의 하나인 것이다.
독자들도 익히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가격을 추정하는 삼각 측량법이 바로 ‘퍼’(PER)라고 쓰는 가격과 이익의 비율이다. 이는 ‘Price to Earning Ratio’의 약자로 가격은 미래에 벌어들일 이익의 합과 같다는 이론이 전제돼 있다. PER에 대해 여러가지 복잡한 수리적·회계적 관점의 설명이 가능한데 여기서는 가장 간단하고 상식적인 설명을 해볼까 한다.
/사진제공=일러스트레이터 조수연 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PER은 미래이익 기준… 가격 추정 활용
시장 참여자들의 직관에 의해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면 그 가격은 벌어들이는 이익의 몇배라는 방식으로 판단기준이 결정될 수 있다.(PER= 가격/이익=X배) 만약 전체시장이나 산업의 평균적인 PER이 알려지면 미래 이익규모를 추정하고 미래이익에 대응한 평균개념의 적정 가격을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기준으로 지금의 가격이 높은 지 낮은 지를 가늠해보는 는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산업의 PER가 10배이고 가격을 알고 싶은 기업의 1년 후 주당 이익이 1000원이라면 1년 후 적정주가는 ‘10배×1000원=10000원’이 될 것이다. 만약 주가가 1만1000원 이면 주가가 높고 9000원이면 싸다고 평가하는 단순한 방법이다.
행동경제학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은 의사결정에 복잡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싫어한다. 가격을 계산하기 위해 수학·통계학을 이용해야 한다면 차라리 도망가고 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가장 빈도 높은 선택법으로 기껏해야 가운데 것을 고르거나 가장 싼 것을 고르는 식이다.
필자는 시장의 고수들이 ‘퍼가 얼마야’, ‘시가총액은 크냐’ 등 단순한 나름의 투자 기준을 활용하는 것을 흔하게 경험했다. 이런 의사결정 방법을 휴리스틱(heuristics)이라 하고 ‘주먹구구’라고 번역을 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좀 길지만 ‘간편기준에 의한 직관적 선택’이 옳은 번역인 것 같다. PER는 대표적인 투자의 휴리스틱이다. PER를 응용해서 장부가를 기준으로 한 PBR, 매출을 기준으로 한 PSR(Price to Sales Ratio) 등 다양한 투자의 휴리스틱이 이용되고 있다.
이미 설명 과정에 눈치를 챘겠지만 PER는 미래 이익을 기준으로 계산한 PER를 알아야 가격 추정에 이용할 수 있다. 흔히 ‘포워드 퍼’(Forward PER)라는 것인데 포털사이트의 증권정보에는 기본정보로 제공하는 곳이 많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3호(2019년 3월12~1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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