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1996년 5월 두산그룹 신 CI 선포식에서 새로운 심벌이 새겨진 그룹기를 흔들고 있다. / 사진=두산그룹
지난 3일 별세한 고(故)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은 6·25 참전용사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해군에 자원 입대했다. 목숨을 걸어야 했던 상황임에도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것이다. 그는 통신병으로 비밀훈련을 받고 암호취급 부서에 배치된 후 해군 함정을 타고 함경북도 청진 앞바다까지 북진하는 작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조용한 성품 때문에 이 같은 공적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뒤늦게 인정을 받아 2014년 5월 6.25전쟁 참전용사 국가유공자 증서를 수여 받았다.
고인은 어려서부터 선친인 박두병 초대회장으로부터 “늘 겸손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고 자란 영향으로 평소 “내가 먼저 양보하면 된다”는 말을 자주 했다.
또한 ‘분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품고 살았다. 고인은 ‘수분가화(守分家和)’를 가훈으로 삼았다. ‘수분가화’는 ‘자신의 분수를 지켜야 가정이 화목하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면 ‘능력 범위 안에서 행동하라’는 뜻이며 ‘조금씩 양보하고 참아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형제와 자녀들에게 ‘수분가화’라는 붓글씨가 적힌 액자를 선물하면서 분수에 맞는 삶을 강조하기도 했다.
아내를 향한 사랑도 남달랐다. 가정에서의 모습에 대해 유족들은 “아내에 대해 평생 각별한 사랑을 쏟은 남자”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부인 고(故) 이응숙 여사와는 1960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 여사는 박 명예회장에게 있어 인생의 ‘동반자’이자 ‘조언자’였다.
이 여사는 1996년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박 명예회장은 암투병 중이던 부인의 병실 소파에서 쪽잠을 자며 오랜 기간 간병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일찍 떠나 보낸 아내를 한결 같이 그리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23년 간의 ‘사부곡(思婦曲)’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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