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우리를 괴롭게 만든다. 생업을 위해 꿈을 포기한 채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선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힙합 뮤지션 오프블랙(Off Black)으로 활동하는 이준영씨(29)도 마찬가지였다. 생계를 위해 취업전선에 뛰어들다보니 보디빌딩 전문미디어에서 수년간 기자로 활동했다. 지난해 직장인의 신분을 벗어난 오프블랙은 신생 레이블에 소속된 가수로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
◆배치기 보고 꿈을 키운 소년
오프블랙이 힙합에 입문한 계기는 ‘배치기’의 음악을 듣게 되면서부터다. 친한 형에게 추천받은 노래 ‘140’이 힙합에 흥미를 갖게 만든 전환점이었다. 배치기를 동경하던 소년은 MC스나이퍼, 리쌍, 에픽하이, 드렁큰타이거 등 국내 힙합씬을 접하며 꿈을 키웠다. 에미넴의 ‘Lose Yourself’는 그가 처음 듣게 된 외국 힙합이었다.
12년전 고등학교 축제가 그의 첫 무대였다. 무대에서 울렁증을 호소하는 대부분의 사람과는 달리 환희를 느꼈다고 그는 기억했다. 오프블랙은 “어릴 때 검도를 하며 많은 사람 앞에서 심사를 본 경험 때문인지 무대에서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며 “오히려 신나게 즐겼고 본격적으로 힙합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오프블랙은 고등학교 3학년 당시 ‘내 음악’을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학업에 매진했다. 대학 전공도 실용음악과를 선택해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체능 계열의 특수성상 전공을 살려 취업하는 일은 쉽지 않았고 결국 대학 졸업 후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오프블랙이 된 이준영
이준영씨는 2018년 4월 발매한 싱글 ‘Nightmare’부터 오프블랙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어릴적 별명인 ‘블랙’을 활용한 활동명을 고심하던 그는 검색을 하다 찾게된 오프블랙의 속뜻을 보고 매력을 느꼈다.
그는 “블랙이라는 별명을 살리고 싶었는데 오프블랙의 사전적 의미를 보니 제 이미지와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며 “완전한 검정색에 가까우면서도 붉은색·푸른색·회색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는 뜻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오프블랙으로 활동한 그는 지난해 네장의 싱글앨범을 발매했다. 지난달 28일 발매한 싱글앨범 ‘Mute’는 그의 음악적인 색채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음반이다.
타이틀곡 Mute는 몽환적인 분위기에 읊조리는 듯한 래핑이 특징이다. 활동명이 절묘하게 오버랩되며 신비한 느낌을 전달한다.
오프블랙은 “이번 앨범은 음소거를 콘셉트로 잡아 다소 어두운 느낌으로 제작했다”며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가수가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무언의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음악을 내더라도 알려지지 않는다면 존재조차 모른다는 느낌을 곡으로 풀어냈다”고 설명했다.
같은 앨범에 실린 ‘Munge’(먼지)와 ‘Noise’도 색다른 매력을 풍긴다. Noise는 가사가 없는 소음을 표현한 연주곡이며 Munge의 경우 미세먼지와 속세를 빗대 풍자한 얼터너티브 힙합이다.
그는 “기술적으로 화려하고 귀에 박히는 랩을 했는데 작사, 작곡, 녹음, 믹스까지 혼자 하다보니 준비한 음악에 맞게 랩을 하게 됐다”며 “자극적이지 않고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지향하다보니 옆집에 사는 형이나 동생같은 래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래퍼에서 프로듀서로
그는 “랩으로 시작했는데 언제부터인가 프로듀싱에도 욕심이 나더라”며 “같은 크루에 속한 동료의 앨범 중 7곡에 참여하면서 프로듀싱에 대해 재미를 느꼈다. 랩·프로듀싱 모두 잘하는 래퍼로 인정받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현재 오프블랙은 100곡에 달하는 곡을 등록하기 위해 정규앨범과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정규앨범을 작업하는 데 공을 들이다보면 프로젝트 진행이 늦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오프블랙은 “지금 구상한 대로 간다면 정규앨범은 4월에 나올 예정”이라며 “봄에 어울리는 콘셉트로 제작하는 만큼 밝은 분위기를 기대해도 좋다. 프로젝트는 이달 안에 두 개의 미니앨범을 발매하는게 목표”라고 전했다.
인터뷰를 마친 오프블랙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다며 웃어보였다. 그는 “작년에 회사를 나오고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에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아요. 일을 할 때보다 수익은 절반 가까이 줄었지만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배치기 형들도 직접 만나 제가 작업한 결과물을 보여주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죠. 올해 더 열심히 해서 주변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하는 래퍼 오프블랙이 되겠습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3호(2019년 3월12~1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