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홍 대한항공 대표이사 부사장. /사진=임한별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 경영권을 박탈당했다.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전날 조 회장의 연임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대한항공은 27일 오전 9시10분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대한항공 본사에서 ‘제57기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주총 시작부터 이상 징후가 감지됐다. 지난해 의장으로 나선 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이사 사장 대신 우기홍 부사장이 단상에 오른 것이 그 시작이다.

우 부사장은 감사보고, 영업보고, 내부회계관리제도 운영실태 등을 주주들 앞에서 보고했다. 이후 의결사항인 제1호 의안 재무제표 및 연결재무제표 승인의 건, 정관 일부 변경의 건, 이사 선임의 건, 제4호 의안 이사 보수한도 승인의 건 등을 상정했다.
채이배 의원과 발언을 반대하는 일부 주주들. /사진=임한별 기자
1호 의안부터 주주간 고성 및 폭언이 오갔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주주 대리인 자격으로 참석해 “대한항공의 정상화를 원하는 주주들과 함께하기 위해 왔다”며 “땅콩회항부터 지금까지 조씨 일가의 황제경영으로 한진그룹, 대한항공이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 평판의 추락과 경영손실, 사익편취 그리고 한진과 대한항공으로부터 받는 50억원의 보수, 500억원이 넘는 퇴직금 지급 규정 등의 문제를 지적해왔다”면서 “조 회장은 문제가 있으면 검토하겠다고 했는데 지난해 조 회장은 배임, 횡령으로 검찰에 기소됐다”고 덧붙였다.
일반 주주 A씨는 채 의원의 발언에 “주총은 안건 순서대로 진행돼야 하는데 돌발발언이 나오고 재판 중인 부분을 놓고 비판을 하냐”며 “순서대로 간략하게 진행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채 의원을 비롯 주주들간의 고성이 오갔지만 원안대로 제1호 의안은 통과됐다.


정관 변경의 건은 큰 무리 없이 통과됐지만 우 부사장과 채 의원간의 설전이 벌어졌다. 채 의원은 “1호 의안에서 질문한 내용을 왜 답변하지 않느냐”라며 “주주가 질문했으면 답을 하는 게 경영진의 몫”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우 부사장은 “관련 질문은 회사 재무제표와 큰 상관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사진=뉴스1 DB
이날 주총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제3호 의안 중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건은 순식간에 결론이 났다. 당초 치열한 표대결이 예상됐지만 이미 사전 위임장 확보 결과, 조 회장은 연임이 불가능한 상태였던 것. 정관상 조 회장이 사내이사 연임을 하려면 총회 참석 주주 기준 3분의 2(66%)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찬성 64.1%, 반대 35.9%로 부결됐다.
우 부사장은 “오늘 아침까지 파악한 결과, 다른 주주들이 몇십만, 몇백만주를 가져와도 결과가 바뀌지 않아 결과를 바로 발표한다”고 설명했다. 조 회장의 재선임 불발에 따라 1999년 부친인 고 조중훈 회장의 뒤를 이어 대한항공 대표이사에 오른 지 20년 만에 경영권을 박탈당했다.

이번 결과는 전날 대한항공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반대 결정이 큰 영향을 끼쳤다. 지난 25일부터 조 회장의 재선임 여부를 논의했던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이틀에 걸친 회의 끝에 조 회장 연임 반대를 최종 결정했다. 현재 배임 및 횡령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것이 기업가치 훼손 또는 주주가치 침해에 해당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대한항공 지분은 2018년 말 기준 조 회장과 한진칼 등 특수관계인의 보유 지분 33.34%와 국민연금 11.56%, 우리사주 2.14%로 구성됐다. 남은 52.96%는 외국인 주주(약 24%)를 포함한 소액주주들이다. 외국인 주주의 경우 이미 캐나다 연금, 플로리다 연금 등 해외 공적연금 3곳이 조 회장 연임 반대 입장을 표명한 상태였기 때문에 국민연금의 판단이 중요했지만 반대표 행사를 결정하면서 상황을 뒤집기 역부족이었다.


대한항공은 이번 결과에 유감을 표했다. 대한항공은 “국민연금이 이번 결과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는 그동안 조 회장이 대한항공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해온 점은 고려하지 않은 결정으로 판단된다”며 “주주들의 이익과 주주가치를 감안해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야 하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논란을 이유로 연임 반대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우려스럽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한항공이 이번 사태를 빠르게 수습하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길 바란다”며 “나아가 우리 기업들이 장기안정적 투자를 할 수 있도록 기업경영권이 더 이상 흔들리는 일이 없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