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 주문에 금융지주사와 보험사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주사는 연금관련 부서를 신설하거나 퇴직연금 사업전략을 개편하는 등 은행을 중심으로 발 빠르게 대처하는 모습이다.

이에 반해 보험사는 아직까지 별다른 변화의 움직임이 없다. 일각에서는 보험사가 운용하는 퇴직연금 중 다량이 계열사 물량이어서 수익률 제고에 대한 민감도가 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생명은 20조원이 넘는 퇴직연금을 굴려 규모면에서 1위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계열사 물량을 제외하면 5대 은행에 밀려 6위로 순위가 내려앉는다. 높은 내부거래 의존도가 그대로 반영됐기 때문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내부거래 의존하는 보험사
각 금융협회 등에 따르면 올 3월 말 기준 은행·생명보험·손해보험·증권사의 퇴직연금 적립액은 189조5343억원으로 집계됐다. 은행권이 97조8418억원으로 가장 규모가 컸고 보험권은 54조5142억원(생보 42조9951억원, 손보 11조5191억원), 증권사는 37조1783억원이다.

업권별 가장 큰 차이점은 자기계열사 및 확정기여(DC)형 비중이다. 은행권은 보험사나 증권사에 비해 자기계열사 비중이 확연히 낮았고 DC형 취급 비중이 높았다. 은행권이 다른 금융업권에 비해 보수적 운용에서 탈피했다는 의미다.

먼저 은행권의 자기계열사 거래 규모는 1조4436억원으로 전체 퇴직연금 적립액의 1.5%에 불과했다. 반면 생보사는 31.1%(13조3847억원), 손보사는 20.7%(2조3861억원)가 내부거래 물량이었다. 증권사도 27.0%(10조336억원)로 높은 수준이었지만 내부거래 대부분은 현대차증권 1곳의 물량이다.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는 것은 안정적 물량이 많다는 의미가 되지만 반대로 연금운용 전략에 큰 변화를 줄 동기가 덜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 금융당국도 과도한 내부거래에 대해 규제를 강화키로 하면서 퇴직연금부문도 포함시켰다.

삼성생명의 경우 퇴직연금 규모가 24조5749억원으로 은행들을 압도하는 수준이지만 내부거래 물량을 제외하면 12조4669억원으로 쪼그라들어 신한은행(19조원), 국민은행(17조원), 기업은행(14조원), 하나은행(13조원), 우리은행(13조원)에 이어 6위로 밀린다. 삼성생명의 내부거래 비중은 49.3%다.

퇴직연금 규모가 조단위인 롯데손보(36.7%), 삼성화재(31.5%), 한화생명(15.6%), 현대해상(10.7%) 등도 내부거래 비중이 10%를 초과한다. 증권사에서는 현대차증권의 내부거래 비중이 크다. 11조원 중 9조원이 내부거래여서 82.0%에 달한다. 증권사 전체 자기계열사 물량 10조원 중 대부분이 현대차증권발이다.

푸본현대생명은 현대차그룹 계열사 시절 내부거래 비중이 90%를 넘었지만 대주주가 대만 푸본생명으로 바뀐 후 내부거래 비중이 제로(0)%로 변경됐다. 하지만 여전히 현대차 계열 물량을 유지하면서 회사의 주력 사업도 퇴직연금에 두고 있다.

이에 반해 은행들은 내부거래 비중이 모두 10% 미만이어서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은행권은 확보할 만한 계열사 물량 자체가 적은 만큼 탄력적인 운용으로 퇴직연금 사업 확대를 꾀하고 있다.



◆보수적 운용, 한계로 지적
DC형 비중이 차이나는 점도 눈여겨 볼 사안이다. 은행의 DC형 적립비율은 33.5%이지만 생보사는 16.6%, 손보사는 12.4%에 불과했다. 금융당국이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 차원에서 DC형 확대를 주문해왔지만 보험사 대응은 미온적이다. 증권사는 DC형 비중이 20.7%로 은행과 보험 사이에 놓였다.

퇴직연금은 크게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으로 나뉜다. 개인형퇴직연금(IRP)은 이직이나 은퇴 시 발생한 퇴직금을 넣는 구조로 성격이 조금 다르다.

DB형은 퇴직연금 운용사(금융사)와 기업이 거래를 맺고 퇴직연금 재원을 금융사에 적립하고 정해진 급여를 근로자에 지급하는 유형이다. 기업은 직원에게 약속한 이율을 제공하게 돼 근속이 안정적인 대기업 근로자가 주로 가입한다.

반면 DC형은 회사가 근로자 퇴직급여계좌에 매년 일정액을 납입하고 근로자가 직접 운용하는 유형이다. 과거에는 임금상승률이 낮거나 이직이 잦은 중소기업 근로자 가입 빈도가 높았다. 하지만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고 임금피크제 도입 확산 등으로 은퇴자산을 불리기가 더 어려워지면서 대기업 근로자의 DC형 가입이 느는 추세다.

금융당국도 위험자산 투자 규제를 완화하며 수익률 제고에 힘을 보탰다. ▲DC형과 IRP의 원리금 비보장 자산의 투자 한도 확대 ▲BBB 이상 회사채나 최대 손실폭이 10% 미만인 상품의 비위험자산 분류 ▲원금보장 상품 투자 대상에 저축은행 예‧적금 추가 ▲DC형·IRP에 TDF 100% 탑재 허용 등이다.

◆“1금융 추이 보고 따라갈 것”

저조한 퇴직연금 수익률 문제는 오래 전 처음 거론된 후 최근까지 비슷한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은행들이 낮은 수익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 나서는 추세다.

신한금융지주는 이달부터 계열사별 퇴직연금 부서를 묶은 매트릭스를 출범하고 사회 초년생 고객을 타깃으로 한 생애주기펀드(TDF)를 출시키로 했다. KB금융은 연금사업 콘트롤타워, 하나금융은 ‘연금손님자산관리센터’를 각각 설립키로 하고 퇴직연금 수요에 대응할 계획이다.

반면 보험사와 증권사는 미온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퇴직연금 사업이 자리 잡힌 상태여서 딱히 대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퇴직연금 운용 시스템이 이미 자리잡힌 상황이어서 당장 변화를 줄만한 상황은 아니다”며 “퇴직연금 사업자 최초로 퇴직연금 관리시스템을 구축했고 본사 전담인력이 퇴직연금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고 있다. 운영 노하우를 쌓아 12년째 시장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사 입장에서 퇴직연금 사업 수익성이 우수한 편이 아니고 수익률도 금융사 별로 차이가 크지 않다”며 “1금융권의 움직임을 본 후 추이에 맞춰 사업전략에 변화를 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96호(2019년 6월11~1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