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미스터 쓴소리’로 변신했다. 저성장 고착화와 내수침체, 미·중 무역전쟁, 일본의 수출규제 등으로 한국경제에 비상등이 켜진 상황에서 경제현안 처리에 손을 놓은 정치권을 향해 연일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기업의 경쟁력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행보다. 재계의 대변인이자 정부의 경제파트너로서 표류하는 우리나라 경제정책의 방향을 바로잡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사진=뉴시스 김진아 기자
◆규제완화 미흡 정치권에 작심 비판
“입장차와 견해차가 있어도 지금 그것을 표명해 서로 비난하고 갑론을박할 때는 아닌 것 같다. 서로 참기도 하고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같이 대처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지난 7월17일 제주도에서 개막한 ‘제44회 대한상의 제주포럼’에 앞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박 회장의 발언이다. 일본의 대(對)한국 소재 수출규제에 맞서는 대응책과 중장기전략 마련이 시급한 상황에서 불필요한 정쟁에만 얽매인 정치권을 꼬집은 것이다.
앞서 일본정부는 ▲포토레지스트 ▲에칭가스(불화수소) ▲플루오린(투명) 폴리이미드 등 총 3개 품목의 수출규제를 시작한 데 이어 광복절 전후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다. 만약 한국이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될 경우 수출규제 범위가 약 850개로 늘어나 우리경제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핵심소재의 일본 의존도를 줄이고 공급처 다변화와 국산화를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다양한 규제 장벽이 기업들의 유망기술 국산화를 가로막고 있어서다. 이를테면 소재 국산화를 위해선 화학물질 취급이 필수적이나 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등 환경규정의 허들이 너무 높아 안전기준 충족에만 과도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결국 소재기술 개발과 국산화를 앞당기기 위해선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규제완화가 필수적인 셈이다. 그러나 규제완화 현안은 국회의 정쟁에 밀려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박 회장도 현재의 상황에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그는 “기업들이 소재의 국산화 등 미래 대응을 위한 연구개발(R&D)과 공장 설립 등을 추진하려면 복잡한 인허가나 예상치 못한 장애에 부딪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공급선을 다변화하려면 대체품을 개발해야 하는데 허가받는 데 2년이 걸리면 되겠냐. 빨리 처리할 수 있는 것은 빨리 처리해줘야 한다”고 조속한 규제완화를 호소했다.
◆단결과 화합 통한 위기극복 강조
박 회장은 그간 대내외 경제위기에 대응하고 미래산업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투자가 바탕이 돼야 하며 이를 위해선 규제완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을 일관적으로 펼쳐왔다.
20대국회 출범 이후에는 무려 12번이나 국회를 방문해 여야 대표들에게 조속한 규제완화를 촉구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이 현장에서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다”, “격랑 속에서 흔들리는 처지에 있는 기업들은 누구에게 하소연을 해야 하나 정말 참담하기 짝이 없다”는 등의 거침없는 발언으로 기업의 절박감을 전달하는 한편 규제완화 추동력에 채찍질을 가했다.
그럼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자 박 회장은 최근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보다 직설적으로 정치권을 비판했다. 그는 “일본은 치밀하게 정부부처 간 공동작업까지 해가며 선택한 작전으로 보복을 해오는데 우리는 서로 비난하기 바쁘다”면서 “우리는 기반 과학도 모자라는 데다 신산업은 규제의 정글 속에 갇히다 보니 일을 시작하고 벌이는 자체가 큰 성취일 정도의 코미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가끔 도움이 되는 법도 만들어지긴 하던데 그나마 올해는 상반기 내내 개점휴업으로 지나갔다”고 국회의 부재를 지적하면서 “이제 제발 정치가 경제를 좀 놓아줘야 할 때 아니냐”고 날을 세웠다.
이 같은 박 회장의 비판은 우리나라 정치권의 무능과 책임의식 결여를 부각하려는 의도와는 거리가 멀다. 박 회장의 주장은 불필요한 정쟁을 멈추고 여야정과 민간기업이 하나의 목표의식 아래 힘을 합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박 회장은 이번 하계포럼에서 “지금은 최선을 다해 대통령이 대처하도록 도와야 할 때”라며 “기업들이 각각 처한 입장에서 대처하는 것이 국가가 부담을 덜고 대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야정을 콕 집어 “특단의 대책을 세운다는 생각으로 기업들의 대응책에 전폭적으로 협조해주길 부탁한다”며 “모두가 범국가적인 사안으로 생각하고 여와 야, 정부와 국회, 나아가 민과 관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차분하고 치밀하게 대처해 나가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프로필
▲1955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경영학 학사 ▲보스턴대학교 경영학 석사 ▲1982년 두산건설 입사 ▲1994년 두산음료 전무, 그룹기획조정실 부사장 ▲1998년 ㈜두산 대표이사 사장 ▲2005년 ㈜두산 대표이사 부회장 ▲2005년 두산인프라코어 대표이사 부회장 ▲2007년~현재 두산인프라코어 대표이사 회장 ▲2013년~현재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 본 기사는 <머니S> 제603호(2019년 7월30일~8월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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