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로이터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결국 파국의 길을 선택했다. 2일 일본 정부는 아베 신조 총리 주재로 각의(국무회의)를 열고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명단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반감으로 시작된 일본의 경제보복이 무역 전반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백색국가 제외되면

관련 개정안이 발효되는 시점은 주무부처 수장인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이 서명하고 아베 총리가 연서한 후 공포 절차를 거쳐 해당 시점으로부터 21일 후 시행된다. 내주중 공포가 진행될 경우 실제로 적용되는 시점은 이달 하순이 유력할 것으로 보인다.


백색국가의 경우 일본기업이 수출할 때 일본정부가 승인 절차 간소화 혜택을 주는 나라로 미국, 영국, 아르헨티나, 호주, 뉴질랜드, 한국 등을 포함해 27개국이 지정돼 있었다.

한국은 일본정부의 결정으로 백색국가에서 제외돼 무역 간소화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됐다. 앞으로 일본업체들은 국내기업에 대한 수출을 진행할 때마다 건건마다 일본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관련 전략물자는 약 1100개에 달한다.

백색국가로 등록된 경우 수출시 3년 단위로 수출허가를 받고 1주일 안에 선적이 가능하다. 그러나 비백색국가는 6개월 단위로 허가를 신청하고 심사도 최장 90일까지 받아야 한다. 이는 일본이 무역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의미다.


◆수출품목, 영향 가능성은

전략물자에 대한 수출규제가 진행될 경우 반도체산업을 비롯한 국내 산업도 영향을 피해가기 어려울 전망이다.

수입에 영향을 받을 품목으로는 반도체웨이퍼, 공작기계, 탄소섬유 등이 거론되고 있다. 특히 실리콘웨이퍼와 블랭크 마스크는 대일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말 기준 실리콘웨이퍼의 수입규모는 약 4억7000만달러(약 5500억원)로 이중 일본산은 전체 수입의 39.7%를 차지한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일본산 웨이퍼 의존도는 50%가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반도체웨이퍼나 소자의 측정용 품목의 대일본 수입 의존도는 67.5%에 달했다. 평판디스플레이 제조용 기계 일본산 수입 비중도 82.8%를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반도체 디바이스, 전자직접회로 조립용 기계의 일본산 비중도 52.1%로 나타났다.

해당 품목들은 일본으로부터 공급이 중단되거나 지연될 경우 대체재나 다른 수입선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IT업계에서는 관련 부품의 별도 생산이나 증설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는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결정 이후 3주간의 시간이 남아있는 만큼 수출규제 핵심 품목을 대상으로 예산 지원을 확대하고 연구개발(R&D) 투자시 세제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 등을 통해 총력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산업 타격? “예상외로 미미할 듯”

다소 충격적이라는 업계 분위기와 달리 백색국가 제외 여파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앞서 지난달부터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리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가 가속화 되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기업들은 공급선을 다변화에 나섰다.

솔브레인 등 국내 기업들이 만드는 고순도 불화수소 및 관련 소재를 테스트 하는 등 대체재 찾기에 주력하고 있다. 일본산 소재를 당장 대체하기는 어렵지만 공급선을 다변화 하는 사이 국산화 개발 및 수급에 초점을 맞춘다는 전략이다.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는 일본의 한국 백색국가 제외로 인한 타격은 미미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지난 1일 디램익스체인지는 자체 보고서에서 “일본이 불화수소 시장점유율 60~70%를 차지하고 있지만 다른 지역에서도 관련 소재를 생산중”이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5개월 정도의 재고가 있어 단기적으로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방국가 지위를 박탈한 것일뿐 제재나 규제는 아니다”며 “전략 물자 수출시 면밀하게 검토하는 대만 등 다른 지역과 같은 입장에 놓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포토리지스트의 경우 불화아르곤(ArF)과 불화크립톤(KrF)은 규제 대상이 아니다. ArF 레지스트는 주로 D램과 로직 반도체 공정에 쓰인다. KrF 레지스트의 경우 3D 낸드플래시 공정에 주로 사용되지만 국내 업체가 이미 상당량을 제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 배터리 등을 생산하는 국내 업계에도 타격은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 LG화학의 경우 양극재를 일본 니치아기업에서 공급받지만 그 비중은 높지 않다. 오히려 내재화율을 50%까지 올리는 한편 중국, 유럽 등에서 원료 공급을 다각화할 계획이다.

삼성SDI나 SK이노베이션 측도 배터리 4대 소재를 국내에서 조달하고 있어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일본에서 공급받는 소재도 있지만 규제로 인한 여파에 휘둘릴 만큼 영향은 주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자동차 분야도 상황은 비슷하다. 일반 내연기관차 부품의 경우 대부분 국산화가 이뤄졌고 탄소섬유 등이 사용되는 수소차도 판매량 자체가 많지 않아 대체재 찾기에 여유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