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학회에 참여한 AI기업. /사진제공=뷰노
의료현장에서 쓰이는 인공지능(AI)이라고 하면 의사가 아닌 로봇이 직접 수술하는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AI의 대표 주자인 ‘닥터 왓슨’가 처음으로 등장한 2013년만 해도 로봇이 의사를 대신해 환자를 진료할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현재 치료는커녕 실제 의료현장에서 닥터 왓슨을 보기도 어렵다.
하루가 멀다 하고 AI 관련 뉴스가 쏟아지는 현 상황과 정반대의 모습이다. 요즘은 산업과 정부정책 등 생활 전반에 AI라는 단어가 들어있지 않으면 말이 통하지 않을 정도다. 병원부터 제약·바이오기업도 AI를 적극 활용한다고 홍보한다. 온도차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AI, 어디까지 왔을까.

◆“단 7초 만에 치료법 추천”


“앞으로 적어도 100년 동안은 AI가 직접 환자를 진찰하거나 치료할 수 없을 겁니다. 현재 AI는 질병의 원인이나 메커니즘을 찾는 병리과나 CT·MRI 등 영상의학과와 같은 일부 영역에서만 의료진의 의사결정을 돕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어요. 어디까지나 보조적이라는 거죠.” (김병관 서울보라매병원장)

“많은 사람이 AI를 이야기할 때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스스로 의사결정이 가능한 로봇이나 가상인격체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현재 AI는 데이터를 활용해 기존의 내 일과 사업을 더 효율화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정도입니다.”(정도희 SK텔레콤 상무)

왓슨은 환자에게 필요한 의료정보를 즉각 내놓는다. 단 7초 만에 과거 임상사례와 해외의료기관의 문헌, 의학저널, 교과서, 전문자료 등을 검색해 환자에 맞는 최적의 치료법을 ‘강력추천’, ‘추천’, ‘비추천’ 세가지로 구분하고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왓슨은 2017년 12월 중앙보훈병원을 마지막으로 도입이 크게 줄었다. 2016년 가천대길병원에서 시작해 부산대병원, 건양대병원, 전남대병원 등 지방병원을 중심으로 도입이 활발했으나 국내에서 더 이상 세력을 확장하지 못하고 있다. 의료현장에서 왓슨을 자주 볼 수 없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나빠서다. 왓슨 750서버 가격은 한대 당 3만4500달러(약 4100만원)부터 시작하며 사용빈도에 따라 이용료는 달라진다.

전문가들은 왓슨의 성장세가 주춤하는 또 다른 이유에 대해 “주로 북미 환자들의 데이터로 학습돼 동양인의 인종적 특성에 맞추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가천대길병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국내 의료진과 왓슨의 강력추천분야 의견 일치율은 55.9%였다. 환자에게 어떤 치료가 가장 적합한지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의료진의 몫이다. AI는 거들뿐이다.


왓슨 진료 현장. /사진제공=가천대길병원

◆국내 특성 담은 ‘한국형 AI’ 뜬다
인종적 차이를 감아하더라도 왓슨은 의료진에 다양한 치료옵션을 제시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의미가 깊다. 왓슨의 한계를 뛰어 넘을 한국형 ‘AI’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대학병원은 의료 정보기술(IT)기업과 손잡고 개발에 나섰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의 경우 의료IT기업 셀바스와 조기위암 예측 AI ‘VGG-16’을 개발했다. 위 내시경 사진을 분석해 조기위암을 발견하고 종양의 침범 깊이를 예측할 수 있다. 조기위암 발견 정확도는 98.5%, 종양의 침범 깊이 예측 정확도는 85.1%다.

한국형 왓슨으로 일컫는 ‘닥터앤서’도 시판을 앞두고 있다. 서울대병원과 의료IT기업 루닛이 개발한 앤서는 현재 보건복지부의 건강보험 관련 가이드라인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앤서는 폐암 등 4대 흉부질환을 진단하는 AI로 의료진이 앤서의 도움을 받을 경우 최대 9%까지 폐암 판독 능력이 향상됐다.

AI 개발로 의료진은 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환자의 의료정보를 분석하고 솔루션을 제시한다. 글로벌도 AI개발을 가속하고 있다. 중국에선 AI가 1차 질병진단을 맡는 무인병원 시스템이 개발됐으며 구글 AI는 당뇨병 합병증인 ‘당뇨망막증’을 판단한다.

AI는 의료에서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시장조사기관인 프로스트앤설리번에 따르면 2025년까지 글로벌 종합병원 중 약 10%가 스마트병원으로 전환하거나 스마트병원이 되기 위해 관련 기술을 구현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기위암예측 AI./사진제공=강남세브란스병원

◆‘3년→1주일’ 신약개발 기간 단축
신약개발(R&D)도 AI 수혜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신약개발에 AI를 적용하면 약 개발 기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실제 올해 영국의 한 벤처기업 베네볼렌트가 AI를 이용해 루게릭병 치료 물질을 단 1주일 만에 찾아내 화제가 됐다. 기존 제약사 방식으로 신약후보물질 하나 찾는 데만 최대 3년이 걸린다.

현재 글로벌 AI기업과 제약사, IT기업들이 신약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스위스계 다국적제약사 노바티스의 경우, 최근 스타트업 ‘패스에이아이’(PathAI)와 손잡고 병리 분석 AI 개발을 시작한 데 이어 마이크로소프트(MS)와 5년간 제휴를 체결했다.

“신약개발의 비용 투자 대비 효율성이 최근 많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AI 기반 신약개발이 이 같은 분위기를 전환시킬 수 있습니다. 국내도 신테카바이오와 스탠다임 등 20여개의 기업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어 혁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주철휘 한국제약바이오협회 AI신약개발지원센터 부센터장)

스티브 잡스가 창고에서 애플을 만든 것처럼 집안에서 컴퓨터로 신약을 만드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는 상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국내 제약업계는 최근 신약개발부문에서는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 협회 지원센터는 국내 제약사가 AI 최신 동향을 파악할 수 있게 글로벌 뉴스를 빠르게 공급할 예정이다.

AI업계 관계자는 “정보통신기술(ICT) 발달로 양질의 의료정보가 범람함에 따라 이를 처리하기 위해서라도 의료진은 AI를 활용할 것이다. 앞으로 과제는 ‘어떻게 하면 치료 보조수단으로 치료 성공률을 얼마나 높일 것이냐’에 달렸다”며 “앞으로 AI를 활용한 신약 개발도 제약산업에서 중요한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14호(2019년 10월15~2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