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시대에 자산가들은 이익을 추구할 목적으로 실물자산이나 금융자산을 구입한다. 모험자본으로 불리는 사모펀드에 투자해 정기예금 이상의 수익률을 거두고 부동산을 사들여 시세차익을 얻는다. 최근에는 보이지 않는 디지털자산 가상화폐 투자도 인기다. 정부는 실수요자와 성실히 세금을 납부하는 이들은 합법적인 '투자자'로 보는 반면 일정기간 후에 이익을 남기고 다시 파는 갭투자와 편법거래는 '투기꾼'으로 취급한다. <머니S>가 금융·부동산·가상화폐시장에서 투자와 투기의 차이를 알아봤다.<편집자주>

[머니S리포트]투자와 투기 사이- ②부동산 투기와의 전쟁 선포 


#. 30대 직장인 A씨는 지난해 7월 전세를 끼고 아파트 한 채를 샀다. 현재 아파트 값은 9억2000만원으로 올라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40%에서 20%로 줄었다. 대출이 막힌 A씨는 올 11월 전세계약 만기를 앞두고 집을 팔아야 할지 고민이다. A씨는 “대출규제가 쏟아지다보니 집 가진 사람은 ‘투기꾼’이고 내집마련을 꿈꾸는 무주택자는 ‘잠재적 투기꾼’이 됐다”며 “실수요자의 대출을 제한하는 규제는 불공평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1월8일 청와대 국민청원 글 
서울 시내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매물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사진=뉴시스 김병문 기자
정부가 부동산대책으로 내놓은 ‘대출규제’를 둘러싸고 소위 ‘갭투자’를 한 집주인이나 신규 구매를 염두에 뒀던 수요자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12·16부동산대책으로 ‘전세 주고 전세 사는’ 무주택자나 1주택자도 대출규제에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출규제를 풀어 달라’는 청원글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 한달간 ‘부동산 투자’나 ‘부동산 투기’를 키워드로 넣은 청원은 7000여건을 넘었다. 대출규제를 둘러싼 쟁점은 부동산 ‘투자자’와 ‘투기꾼’의 구분이다. 그동안 무주택자와 1주택자는 9억원 이상 고가주택 구입 시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전세대출, 신용대출 등이 허용됐으나 앞으론 공적보증은 물론 민간보증인 SGI서울보증까지 전세대출보증이 제한된다.

보증부 전세대출자가 고가주택을 매입하거나 다주택을 보유할 경우 전세대출이 회수된다. 전세대출을 통한 갭투자 수요를 막겠다는 취지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도 개인 단위로 적용해 신용대출을 더 조인다. 사실상 ‘갭투자’하는 투기꾼과 투자자에 같은 규제가 적용되는 셈이다.

◆실거주 입증, 자금출처 밝히면 ‘투자’


물론 다른 점도 있다. 시가 9억원이 넘는 1주택자도 가족과 떨어져 살 수밖에 없어 보유주택 외에 전셋집이 필요함을 문서로 증빙하면 실수요자로 인정된다.

대표적인 사례는 전근(직장이동)이다. 예컨대 가족은 서울시내 보유주택에 살고 있는데 본인이 지방에 발령을 받은 경우다. 이때 본인은 지방 근무지에서 전세를 살 수 있도록 전세대출을 규제하지 않는다. 다만 인사발령서 등 전근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은행에 제출해야 한다. 가족이 지방에서 거주하는데 자녀가 서울로 진학한 경우(자녀교육)도 예외로 인정된다. 이 경우에도 자녀의 재학증명서나 합격통지서 등을 증빙자료를 은행에 제출해야 한다.

질병 치료를 목적으로 가족과 떨어져야 하는 경우도 실수요로 인정된다. 가령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이 서울 소재 대형병원 근처에서 1년 이상 통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 진단서나 의사 소견서를 내면 전세대출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60세 이상 부모님을 모시기 위한(부모봉양) 전세주택이 필요한 경우나 학교 폭력에 따른 전학 역시 전세 거주 실수요로 인정된다. 다만 실거주 수요는 보유주택 소재 기초 지자체(시·군)를 벗어난 전세거주 수요만 인정한다. 서울시나 광역시 내의 구(區)간 이동은 인정하지 않는다. 서울 강북에 있는 주택에서 거주하면서 강남의 전세 주택을 얻는 경우는 실수요자로 보지 않는다는 얘기다.

오는 3월부터는 투기과열지구에서 9억원을 넘는 주택을 매입할 때 15종의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정부가 증여세 등 납세 대상자를 가려낼 수 있도록 자금조달계획서를 꼼꼼히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최근 국토교통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12·16대책의 후속조치인 이 개정안은 자금조달계획서 항목을 세분화해 부동산에 들어가는 자금을 살펴본다.
계획서에 조달한 자금을 어떻게 갚을지 구체적인 계획도 계좌이체, 보증금·대출 승계, 현금 지급 등으로 밝혀야 한다. 만약 현금으로 집값을 치렀다면 왜 굳이 돈뭉치를 건냈는지 그 이유도 소명해야 한다.
증여나 상속받은 돈으로 주택을 구입했으면 누구에게 받았는지 상세히 밝혀야 한다. 부부 간 증여는 6억원까지 증여세를 면제하지만 직계존비속의 증여는 5000만원까지만 면제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주택 구매자금 조달 과정에서 증여세·상속세를 탈루하는 등 불법사례를 적발해 주택시장을 교란하는 행위를 잡아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세금 안내고 불법증여… ‘투기꾼’ 잡는다

KB국민은행의 부동산시세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서울시내 아파트의 중간 가격은 8억8000만원, 시세가 9억원을 넘는 아파트 비율은 37.1%다. 10채 중 4채 가량이 고가주택에 해당되는 셈이다.

정부가 고가주택 보유자의 자금출처를 따지는 이유는 편법거래 근절하기 위해서다. 부동산 투기세력이 증여세를 낮추기 위해 분할증여 또는 차입 증명서류를 쓰지 않고 가족 간 금전거래하는 등 탈세 행위를 벌이고 있다. 세금은 내지 않고 버젓이 매매거래 차익을 얻으려는 투기세력으로 인해 부동산시장이 과열됐다고 판단한다.

지난해 국토부가 서울시, 금융감독원과 합동조사를 벌인 결과 서울 아파트 거래 내역 조사 결과 편법·불법 증여, 대출 규정 위반 등으로 의심되는 거래는 2000건 넘게 적발됐다. 서울 서초구에선 만 18세 미성년자가 11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전세(보증금 5억원) 끼고 사면서 부모와 친족 4명으로부터 각 1억원씩 6억원을 분할 증여받아 매매대금을 치른 사례가 적발됐다. 조사팀은 부모가 6억원을 자식에게 증여하고도 증여세를 낮추기 위해 다른 친족을 통한 것으로 판단하고 국세청에 통보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 투자와 투기는 모두 이익을 위한 행위지만 불법이 있으면 투기”라며 “집값이 잡히지 않으면 9억원 이하 주택에 대해서도 대출을 조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최근 부동산 카페에는 집값을 기준으로 삼은 계급용어까지 등장했다. 무주택자는 ‘노비’, 9억원 이하는 ‘상민’, 9억~15억원은 ‘중인’, 15억원 초과는 ‘양반’이라는 신조어다. 규제에서 영향을 덜 받는 부자들이 거리낌없이 부동산을 싹쓸이하는데 한편에선 청약조차 포기하는 계층도 늘었다는 얘기다.

서울 등 수도권의 아파트값을 기준으로 강남권은 양반, 지방 소도시는 노비 등으로 구분한 글도 찾을 수 있다. 참여정부 당시 버블세븐을 빗대 현 정부에선 ‘노블세븐’(강남 4구+마·용·성)이란 용어도 나왔다.

고성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장은 “투기세력을 잡기 위한 부동산대책이 합법적인 투자와 실수요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30호(2019년 2월4~1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