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HDC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지난해 11월12일 아시아나항공 인수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 관련 입장 발표를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머니투데이 김휘선 기자
HDC현대산업개발과 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주저한 이유는 가격 협상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HDC는 최근 아시아나에 파견한 인수단을 철수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인수합병(M&A) 환경이 급격히 나빠졌다.
HDC는 아시아나항공 주식 취득 예정일 하루 전날인 4월29일 인수 일정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인수 포기를 예상했지만 대체로 채권단의 더 유리한 지원을 이끌어내려는 전략이라는 시각에 무게가 실렸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 9일 채권단 KDB산업은행에 인수 조건을 재협의하자고 공식 요청했다. 채권단이 최근 HDC에 오는 27일까지 인수 의사를 밝히라고 한 데 대한 답변이다. HDC가 지난해 말 아시아나항공 인수계약을 체결한 당시 인수가격은 2조5000억원.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항공업계 상황이 악화되며 현재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가치는 크게 떨어진 상태다. 따라서 인수가격을 재산정해야 한다는 게 HDC의 주장이다.


HDC는 입장문을 통해 3가지를 요구했다.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제표가 현재 상황을 제대로 반영했다는 점이 확인돼야 한다, 코로나19 확산에도 계속기업으로서 존속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계약을 연장할 경우 협상 파트너는 금호산업이 아닌 산업은행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영향으로 한국인의 입국 제한 등을 실시하는 나라가 늘어난 가운데 인천국제공항에 아시아나항공 항공기가 이륙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이기범 기자

미래에셋 이탈 시 5000억원 추가 필요해
재무제표 상황은 인수가격과 직결되는 문제다. HDC는 주식매매계약(SPA) 기준일인 지난해 6월 말 대비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상태가 극도로 악화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HDC는 아시아나의 부채비율이 1분기 말 현재 지난해 반기 말 대비 1만6126% 급증했다고 밝혔다. 자본총계는 1조772억원 감소해 자본잠식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HDC는 “외부 감사인이 아시아나항공 내부 회계관리 제도에 대해 부적정 의견을 표명함에 따라 이번 계약상 기준인 재무제표의 신뢰성이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HDC는 인수가 진행되는 과정에 추가 차입과 정관 변경, 계열사에 대한 지원 등 중요한 재무적 변화를 아시아나항공이 일방적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부채비율과 자본상황이 악화됐고 재무적 변화가 발생했다는 주장은 결국 기업가치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는 의미다.

HDC현산은 지난해 말 SPA 체결 당시 구주 30.77%를 3228억원에 사고 2조1771억원의 유상증자를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의 상황이 급격히 나빠진 만큼 HDC는 구주 가격 하락, 유상증자 발행가액 조정 등을 제안할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에 지원한 대출금의 만기 연장, 영구채 5000억원의 출자전환 등에 대한 논의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는 HDC가 채권단과 합의하면 인수 마감시기를 6개월 연장해 올해 연말까지 늦출 수 있다는 계약서상의 조항을 활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완전자본잠식을 눈앞에 둔 부실기업인 데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경영여건이 나쁜 만큼 재무적투자자(FI)인 미래에셋대우도 투자를 주저할 수 있는 상황이다. 만약 미래에셋대우가 이탈하면 HDC는 최소 5000억원의 금액을 추가로 조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