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동차업체가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다. 2019년 7월부터 본격화된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이어 올해 1월 본격화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여파다. 여기에 국산차 상품성이 일본차를 넘어서면서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콧대도 완전히 꺾였다. 일본 브랜드의 주 무기인 하이브리드 자동차 분야는 국산차가 연비·정숙성 모두 앞선다. 판매 부진에 시달린 닛산은 결국 철수를 결정했고 토요타와 혼다도 위기에 내몰렸다.
━
잘 나가던 일본차, 얼마나 추락했나?━
2012년 이후 6년 간 한국에서 일본 자동차는 가파른 상승세를 그렸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일본차 판매량은 2013년 2만2042대에서 2018년 4만5253대로 2.1배 증가하며 정점을 찍었다. 같은 기간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일본차 점유율은 14.1%에서 17.4%로 3.3%포인트 상승했다. 하지만 2019년 판매량은 3만6661대로 전년대비 19.0% 감소했고 점유율도 2.5%포인트 하락한 14.9%로 후퇴했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따른 결과다.
불매운동 후유증은 2020년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올해 들어 5월까지 일본차 판매량은 7308대로 전년동기대비 80.1% 급감했다. 불매운동이 시작된 2019년 7월부터 2020년 5월까지 10개월 간 판매량 역시 전년동기대비 49.3% 줄어든 2만7159대에 그쳤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올해 판매량은 2만대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클 것으로 업계에선 보고 있다. 일본차의 공백은 미국차가 조금씩 잠식하고 있다. 올해 5월까지 미국 자동차 판매량은 1만3371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8.8% 증가했다. 미국은 단숨에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2위를 꿰찼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 자동차는 포드 중심이었는데 최근 쉐보레와 테슬라가 라인업을 늘리며 판매량이 늘고 있다”며 “일본차 공백을 메우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뒤처지는 일본차 상품성━
한국시장에서 일본차의 부진은 가뜩이나 불매운동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친 탓이다. 여기에 국내외 브랜드의 신차 공세까지 이어지며 일본차는 유례없는 큰 폭의 할인에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2019년 7월 이후 출시한 현대차의 신차(부분변경, 완전변경 기준)는 그랜저·아반떼, 기아차는 모하비·K5·쏘렌토, 제네시스는 GV80·G80 등 모두 7종이다. 같은 기간 일본차 신차는 닛산 맥시마, 토요타 GR수프라, 프리우스C 크로스오버 등 3종이 전부다.
신차는 해당 브랜드 실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과 교수는 “신차는 그 효과와 함께 다른 모델 판매량까지 늘리는 낙수효과도 있다”며 “신차가 적은 일본 브랜드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현대차 등 국산차의 상품성 향상도 일본차의 부진을 부채질한다는 의견이다.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대표적이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상품성을 판단하는 중요 기준은 연비다. 2013년 출시한 쏘나타 하이브리드 연비는 16.8㎞/ℓ로 토요타 캠리 하이브리드(16.4㎞/ℓ)와 불과 0.4㎞/ℓ의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7년이 지난 2020년 쏘나타 하이브리드 연비는 20.1㎞/ℓ로, 캠리 하이브리드(17.5㎞/ℓ)보다 2.6㎞/ℓ나 앞선다. 가격도 쏘나타 하이브리드가 3579만원, 캠리 하이브리드가 4290만원으로 16.6%(711만원)가량 저렴하다.
이 같은 연비와 가격은 두 업체의 국내 하이브리드 자동차 판매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두 회사의 친환경 자동차 경쟁이 시작된 2016년 당시 현대차의 하이브리드 자동차 판매량은 2만20대였다. 3년 뒤인 2019년엔 4만4371대로 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토요타는 5721대에서 7151대로 불과 1430대 증가하는데 그쳤다. 판매 대수로 비교하면 이 기간 격차가 1만4299대에서 3만7220대로 2.6배 벌어진 셈이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산차가 기대 이상으로 호조를 보이고 일본차를 넘어선 하이브리드차와 함께 전기차 인기도 높아졌다”며 “일본차의 경우 당분간 큰 폭의 할인을 제공하는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필수 교수는 “일본차는 하이브리드가 현실적으로 경쟁력 있는 모델이지만 신차출시 주기가 길다”며 “불매운동 여파도 크지만 일본차가 까다로운 국내 소비자 취향을 얼마나 빨리 충족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
발버둥치는 일본차 ━
판매 부진이 예상 밖으로 길어지자 일본 자동차들은 할인폭 확대 등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자동차 가격비교 플랫폼 겟차에 따르면 2019년 7월 50만~800만원이던 토요타 할인금액은 2020년 6월 100만~700만원으로, 렉서스는 80만~500만원에서 300만~500만원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혼다는 150만~700만원에서 150만~800만원으로, 닛산은 30만~1050만원에서 1000만~1450만원, 인피니티는 300만~1200만원에서 1000만~1450만원으로 각각 할인폭이 커졌다.
하지만 정작 판매 부진을 해결할 수 있는 신차 출시는 오리무중이다. 올해 초 토요타는 GR 수프라와 캠리 XSE, 프리우스 사륜구동, 프리우스C 크로스오버 등을 선보인데 이어 5월엔 RX리무진, 6월엔 UX 250h F 스포츠를 각각 판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GR수프라와 프리우스C 크로스오버를 제외하곤 신차로 불릴만한 차가 없다. 일본에선 이미 판매 중인 트림을 끼워 넣은 것뿐이다. 철수를 결정한 닛산은 물론이고 혼다도 아직 신차계획은 없다.
수입차업계 한 관계자는 “2019년에 이어 올해 역시 불매운동 여파로 인한 판매부진이 지속되고 있다”며 “닛산 철수로 위기감이 커지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은 없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저작권자 ©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 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