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은 역대 3번째 국난 돌파 목적의 사회적 대타협이다.
이번 대타협은 Δ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 Δ상병수당 도입 논의 추진 Δ파견·용역 등 취약 노동자에 대한 고용유지 지원 등 취약계층 근로자를 위해 노사정이 뜻을 모을 수 있는 주요 대책을 담았단 점에서 의미가 있다.
28일 법정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협약식을 개최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협약'을 보면, 코로나19 위기에 대한 현실적 진단과 함께 노사정이 위기 극복을 위해 각자 추진해야 할 과업이 담겼다.
협약은 전문에서 "노사정 대표자들은 국난에 준한 위기를 맞아 기업의 힘만으로는 고용유지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노사정의 연대와 협력이 절실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비상한 각오"라고 밝혔다.
전문과 본문을 포함해 총 10쪽짜리 협약은 Δ고용유지를 위한 정부 역할 및 노사 협력 Δ기업 살리기 Δ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 등 사회안전망 확충 Δ국가 방역체계 및 공공의료 인프라 확대 Δ이행점검 및 후속논의 등 5장으로 나뉘었다.
◇정부, 고용유지지원금 '당근책'으로 협상 이끌어…재정부담 감내
첫장 고용유지의 경우, 정부는 휴업수당의 최대 90%를 지원하는 '고용유지지원금' 지원비율 상향 기한을 기존 6월30일에서 9월30일로 3개월 연장하기로 했다.
고용유지 대책의 핵심인 고용유지지원금 지원비율이 기존 75% 수준으로 복귀하는 경우, 자금 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실업 사태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정부는 교섭 과정에서 노사 모두에 도움이 되는 고용유지지원금을 당근책으로 상호 양보를 이끌어냈다는 후문이다.
정부는 또한 특별고용지원업종에 한해 고용유지지원금 지급기간을 추가 60일 한시 연장하는 방안도 약속했다. 위기 업종을 위해 특별고용지원업종 추가 지정을 적극 검토한다고 명시하기도 했다.
◇문제의 "고용유지 최대한 노력" 문구…민주노총 불참 불렀다
다음으로는 논란의 '고용유지를 위한 노사의 고통분담' 항목이 이어진다.
협약은 "경영계는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경영 악화 상황에서 위기 극복을 위해 경영 개선 노력을 선행하고, 상생과 협력의 정신을 발휘하여 고용이 유지되도록 최대한 노력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 "노동계는 코로나19에 따른 매출 급감 등 경영위기에 직면한 기업에서 근로시간 단축, 휴업 등 고용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경우 이에 적극 협력한다"고 밝혔다.
이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거센 내부 반발을 촉발했다. 애당초 지난 4월 노사정 대타협을 위한 '원 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제의했던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 문구가 협약 이후 논의 과정에서 구체화될 수 있다고 봤으나, 곧장 "민주노총이 또 속은 것", "야합"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사회적 대화를 통해 뚜렷한 반대급부 없이 정리해고제·파견제만 받아들였던 '트라우마'가 있는 민주노총으로서는 "(고용유지에) 최대한 노력한다"는 문구가 불확실하게 와 닿았던 것이다.
여기에 "노사정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산업현장에서 노사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데 인식을 함께 하고, 노사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원만한 교섭 타결에 최대한 노력하며, 정부는 이를 적극 지원한다"는 문구도 노동자의 고혈을 짜내는 데 악용될 공산이 크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법정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에서 추후 '고용유지 노력'과 '원만한 교섭타결' 등의 구체적인 의미를 정해 나갈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민주노총은 1998년 정리해고제 사건으로 인해 노사정위원회에서 탈퇴한 뒤 공식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불참을 이어오고 있어 반발이 더욱 커졌다.
◇파견·용역에 '협력사 노동자' 지원까지…勞 요구 수용
그럼에도 이번 협약은 노동계의 굵직한 요구들을 대다수 수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협약은 1장(고용유지)에서 "파견·용역 및 사내 협력업체 노동자의 고용유지와 생계안정을 위해 고용유지지원금을 적극 활용토록 지도하고, 노사와 논의를 거쳐 필요한 지원방안을 마련한다"고 규정했다.
그간 고용유지지원금 등 정부의 고용유지 대책은 정규직처럼 고용상태가 안정된 계층에 집중됐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노동계는 이러한 맹점 보완을 요구했고, 정부가 예산 부담을 감안하고 이를 반영한 것이다.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기업일지라도 노사가 근로단축, 휴업 대신 고용유지에 합의한다면 임금감소분 50%를 최대 6개월 지원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노동계가 '해고를 일삼는 기업에 정부 지원은 가당찮다'며 거세게 요구해 온 바도 합의문 문구로 수용됐다.
협약은 "노사는 기간산업안정기금의 지원 조건 중 하나인 고용규모 유지와 이를 위한 노사 노력사항, 사내 협력업체와 상생협력을 위한 노력사항 등이 준수되도록 하며, 정부는 고용규모 유지 등의 준수 여부를 점검하고 미준수 시 시정요구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고 명시했다.
◇'상생'에 방점 찍은 대타협…'대기업·원청 책임' 명시
위기 상황 아래 대기업과 원청의 책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협약은 이를 위해 '상생 협력 확산'이라는 별도 항을 꾸렸다.
협약은 "대기업 노사는 코로나19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중소 협력업체가 위기를 극복하고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상생의 관점에서 적극 노력한다"고 천명했다.
이어 "원·하청이 함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사내근로복지기금 또는 공동근로복지기금을 활용해 협력업체 근로자 지원 등에 노력한다"며 "노사정은 취약계층 지원 및 실업대책을 위해 근로복지진흥기금 등에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등 사회적 협력의 분위기가 확산되도록 노력한다"고 규정했다.
2장(기업 살리기)에선 "노사정은 정부의 재정·금융 상 전폭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는 문구가 적혔다. 정부가 적극적 재정운용으로 업종·분야 별 유동성 위기 시 즉각 자금 공급에 나서겠다는 약속이다.
여기에 산업 생태계 보전을 위해 제조업 협력업체에 대해서도 지원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전반적으로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파견·용역·협력업체 근로자, 중소·하청업체 등 취약 경제주체들을 보살피자는 취지가 강하게 뒷받침된 협약으로 평가된다.
◇'전국민 고용보험' 한뜻 모았다…'상병수당' 도입도 추진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이 노사 대표단체의 동의를 얻었다는 의미도 크다.
합의문은 "정부는 모든 취업자가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 전 국민 고용보험을 위해 연말까지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로드맵'을 수립한다"며 "적용대상 단계적 확대를 위해 소득정보 현행화, 유관기관 정보공유 강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또 "특고 고용보험 가입을 위한 정부 입법을 추진하고, 그 과정에서 특고의 특성을 고려하며 노사 및 당사자 의견을 수렴한다"고 적었다. 이와 관련해 노동계 일각에선 '입법 과정서 특고의 특성을 고려한다'는 문구를 굳이 포함시킨 경영계 저의를 의심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정부가 고용보험기금에 대한 일반회계 지원 확대를 약속하는 등 기금 고갈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시점에 유의미한 내용은 여전하다.
특히 "사회적 논의를 거쳐 보험료 인상 검토", "모성보호사업의 일반회계 지원"을 비롯해 고용보험기금의 재정건전성 제고를 위한 구체 방안을 적시했단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노동계 숙원인 '아프면 쉴 수 있는' 상병수당 도입 논의 개시도 규정했다.
협약은 "업무와 연관이 없는 질병 등으로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득의 손실로 인한 생계 불안정을 개선하기 위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및 재정 여건 등을 종합 고려해 사회적 논의를 추진한다"고 적었다.
요컨대 상병수당 도입 '논의'를 추진한다는 내용인데 주로 민주노총 등 노동계에서는 이것이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불확실한 문구라고 봤으나, 정부는 이미 2022년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시범사업 도입을 예고했다.
국가 방역체계와 공공의료 인프라 확대에 관해서도 "감염병 확산이 쉬운 밀집?취약사업장에 대한 강화된 방역지침 마련", "보건의료 종사자의 일상복귀 지원 등 보호대책 마련" 등 코로나19 시국에 빠져선 안 될 대책도 포함됐다.
◇민주노총 없는 '반쪽'…'22년 만의 완전체' 불발 아쉬워
이번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협약은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에 한국 사회가 배출해낸 '완전한 사회적 합의'가 될 뻔 했다.
노사 갈등이 뿌리 깊은 우리나라에서, 노사정 대화에서 늘 한 발짝 물러나 있던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 과정에 '함께했다'는 의미가 깊었다.
정부는 이 같은 '완전체 합의' 성사를 위해 협약식 직전 민주노총의 1개 조항 문구 수정을 수용하고, 3개 조항의 우려점을 불식하는 구체적 방안을 내놨지만 아쉬움만 남게 됐다.
민주노총은 지난 1일 열린 협약식에 합의문 문구를 둘러싼 내홍을 이유로 막판 불참을 통보한 데 이어, 지난 23일 임시 대의원대회에서는 대의원 약 62%의 반대로 합의문에 대한 내부 동의를 얻지 못했다.
결국 우리나라의 사회적 대화는 또다시 '한국노총 중심'으로 펼쳐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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