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지 않았다는 점을 내세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추진을 막아왔던 국민의힘이 의외의 빌미를 주고 말았다.
여당이 특별감찰관·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을 하겠으니 공수처 문제도 같이 풀자고 역제안하자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9일 특별감찰관·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절차가 마무리된 후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을 추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민주당의 공세를 막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장-중진의원 회의가 끝나고 기자들과 만나 "공수처장 후보 추천은 추천하면 끝이지만 특별감찰관은 여당이 자기 사람만 고집하는 등 협조하지 않으면 절차 시작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주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3~4년간 지지부진했던 특별감찰관 임명과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 문제를 명확히 하라고 이낙연 민주당 대표에게 요구했다.
그러자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본회의 후 열린 원내대표단-상임위원회 연석회의에서 즉각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이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을 즉각 추천하고 공수처의 정상적인 출범을 약속한다면 특별감찰관 후보자와 북한인권재단이사회 국회 추천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주 원내대표가 이에 대해 바로 다음날 선결 조건을 밝힌 것은 국민의힘이 그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공수처 출범이 뜻하지 않게 현안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은 공수처가 입법-사법-행정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삼권분립'에 반하는 등 초헌법적 국가기관의 탄생이라는 점을 들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청구했다.
헌재가 '공수처는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라는 결정이 있다면 그때 가서 후보 추천위원을 추천해도 늦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런 논리로 민주당의 추천위원 추천 압박에 응하지 않아 왔다.
그러나 민주당이 주 원내대표의 제안을 전격 수용하면서 국민의힘이 난처한 상황에 처하자 주 원내대표가 조기에 전제조건을 다시 걸고 나온 것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특별감찰관 임명과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에 큰 부담이 없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권 말기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특별감찰관은 공수처가 출범하면 사실상 무용지물이고, 북한인권재단의 경우도 현재의 남북 및 국제 정세를 고려할 때 추진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다.
주 원내대표는 이런 이유로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 추천 전에 선행 조건을 제시한 셈인데, 이는 다시 말해 국민의힘이 추천하는 특별감찰관 후보를 대통령이 임명하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여당이 수용하기 힘든 부대조건을 단 셈이다.
특별감찰관법에 따르면 국회는 15년 이상 판사·검사·변호사 직에 있던 변호사 중에서 3명의 특별감찰관 후보자를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추천한다. 대통령은 추천서를 받은 때로부터 3일 내에 후보자 중 1명을 특별감찰관으로 지명하고 국회 인사청문을 거쳐 임명한다.
주 원내대표는 "특별감찰관법은 국회가 합의해 2명의 후보를 추천하면 대통령이 한 사람을 지명하도록 돼 있다"며 "늘 여당에서 한 명, 야당에서 한 명씩 추천했는데 이 말은 야당 추천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진정으로 두 개 다하고 싶으면 특별감찰관 추천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저희는 공수처장 추천위원을 추천하겠다"라고 말했다.
공수처 출범 논의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셈인데 국민의힘으로서는 민주당에 공격의 빌미를 줬다는 점에서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
민주당은 주 원내대표의 제안을 근거로 공수처 출범 압박에 대한 공세 수위를 한층 높여갈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의 협조를 끌어내려 유보한 공수처 모법 개정 카드도 꺼내 들었다. 여기에 박병석 국회의장을 중심으로 본회의 화상 표결 등 국회법 일부개정안이 제안된 상황이다.
절대적인 여소야대 상황에서 민주당이 특별감찰관과 북한인권재단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소하는 것으로 명분을 쌓음과 동시에 공수처 출범을 강행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이 주 원내대표의 제안을 물고늘어지면서 공수처 출범을 강행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했다는 지적이 있다"며 "그러나 당은 만약의 상황에 충분히 대비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상황 전개에서 민주당 전략에 쉽게 말려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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