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 참석하고 있다. (대법원 제공) 2020.8.27/뉴스1

(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김명수 대법원장이 25일로 취임 3년을 맞는다.
"사법부의 변화는 시작되었습니다"라는 취임사와 함께 임기를 시작한 김 대법원장은 임기 후 줄곧 사법행정제도 개선과 재판제도개선 등 여러 개혁방안 등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3년의 지난 지금도 김 대법원장의 개혁방안은 이렇다 할 성과없이 아직 '틀잡기'에 그치고 있고, 그마저도 재판제도 개선이 아닌 사법행정 쪽에만 치우쳐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법행정회의 계속 추진했지만 3년째 제자리

김 대법원장은 2017년 취임사에서 "사법행정에 관한 의사결정 및 집행과정에서 수평적이고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인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그 방안으로 사법행정회의 도입을 추진해왔다.

법원이 추진해 온 방안은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새로운 사법행정기구인 사법행정회의를 신설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사법행정회의에는 의결기능만 부여되고 집행기능은 따로 분리한다.


논란이 됐던 재판거래나 재판개입 등이 사법행정 권한이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이에 대한 반성적 고려에서 대법원장의 권한을 분산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법행정회의에 법관이 아닌 외부위원을 몇명 포함할지에 대해 의견이 합치되지 못했고, 논의가 지연되자 대법원은 2019년 8월 대법원규칙을 통해 '사법행정자문회의'를 신설했다.

법이 통과되지 않아 의결기구로서의 역할은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법행정에 대해 대법원장에게 '자문'을 하는 형태로 둔 것이다.

올해 7월 법관 출신인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국회 소속의 추천위원회가 선출한 비법관 8명과 법관 3명, 대법원장 등 12명으로 구성되는 사법행정위원회를 만들어 사법행정을 총괄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자 대법원은 '법원행정처를 없애는 개정안에는 찬성하지만, 사법행정권을 법관이 아닌 외부인사들이 과반인 위원회로 넘기는 것은 위헌'이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위원 구성을 두고 몇 년째 똑같은 갈등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개정안에 대해 대법원이 정면으로 반대의견을 내면서 사법행정회의 신설은 당분간 요원할 전망이다.

◇'좋은 재판' 강조하지만…재판제도 개선방안 어디갔나

김 대법원장은 지난 11일 대한민국 법원의 날 기념사에서 취임 이후 줄곧 강조했던 '좋은 재판'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상고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나 전문법원의 도입을 검토하는 것, 형사사건 전자소송을 준비하는 것 모두 '좋은 재판'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법원 내외부에서는 정작 재판제도 개선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지방법원의 부장판사는 "사법행정제도의 잘못된 점을 고친다는 이유로 그 어떤 때보다 사법행정에 집중하는 아이러니가 생긴 것"이라면서 "재판제도 개선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것은 법관들 사이에선 오래 전부터 나오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대법원은 '좋은 재판'을 위한 제도개선으로 상고제도 개선 추진과 형사 전자사본기록 열람서비스 확대, 대법원 및 하급심 재판중계방송 활성화 등을 꼽고 있다.

그러나 상고심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는 표류하고 있다. 이미 상고허가제가 실패로 끝난 경험이 있는데다, 상고법원을 추진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판을 받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국회에서의 적극적 논의도 불투명하다. 양 전 대법원장이 추진했던 상고법원 법안에 서명했다 곤혹을 치른 이후로 의원들이 상고심 제도 논의에 대한 관심을 끊었기 때문이다.

사법행정자문회의 산하 상고제도개선특별위원회가 수차례 회의 끝에 발표한 내용은 "상고심의 본질적 기능이 무엇인지 논의했다, 여러 상고심 제도를 검토했다"에 불과했다.

또 열람서비스 제공과 재판 중계는 핵심적인 재판제도 개선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형사사건을 주로 맡는 한 변호사는 "대법원이 추진하는 재판제도 개선방안들은 현재 진행되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에 치중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재판을 '보는' 것이 아니라 좋은 재판을 '받는'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판사 해임 국민청원 등 외부 공격 계속…'법관 독립' 과제로

지난달 20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8·15 광화문 집회를 허가한 판사의 해임 청원'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박형순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를 해임하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박 부장판사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면서 이 글은 20만명 이상이 참여해 답변 요건을 넘겼고 여당에서는 '박형순 금지법'을 발의하며 논란이 일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같은달 31일 '법관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에 우려를 표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고,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도 "판사 겁주기 시도"라며 비판했지만 정작 대법원장은 침묵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달 11일에서야 법원의 날 기념사에서 "판결에 대한 합리적 비판을 넘어 근거 없는 비난이나 공격이 있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不動心)으로 재판에 더욱 집중해, 재판을 통해 우리 사회의 핵심 가치가 수호되고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열린 마음으로 사회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시대의 흐름을 읽어 나가는 것도 사법부 독립을 지켜내기 위해 필요하다"며 "익숙함에 대한 과신을 경계하고, 어느새 스스로가 사회 현상과 조류에 둔감해져 있지는 않은지 항상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대법원장으로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온몸으로 막아내겠다"고 했지만, 그동안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왔다.

지난해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법정구속한 1심 재판장에 대해 정치권의 공격이 이어졌지만 김 대법원장은 며칠간 침묵하다 "도를 넘어서 표현이 과도하다거나 혹은 재판을 한 개개의 법관에 대한 공격으로 나아가는 것은 법상 보장된 재판 독립의 원칙이나 혹은 법치주의의 원리에 비춰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지방법원의 부장판사는 "당시 법관들이 무척 분개했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원론적인 발언에 불과했다"고 실망을 나타냈다.

법원 내부에서는 김 대법원장이 내부 개혁에 지나치게 집중해 정작 중요한 법관 독립을 지켜내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재경지법의 판사는 "현재 국회에는 법관의 독립을 위협하는 법안들이 여러건 발의되어 있다"며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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