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로 명품업계 매출이 하락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명품 인기는 여전하다. 명품은 불황일까 불패일까. /그래픽=김은옥 기자

#. 지난 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샤넬 매장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반대쪽 출입문에는 명품 시계 롤렉스를 구매하려는 인파가 북적였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임에도 명품관 앞에 모인 인원만 100여명에 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도 한국인의 명품 사랑이 식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명품은 코로나19 무풍지대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샤넬·에르메스·루이비통 등 3대 명품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해 매출에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한국에선 명품 매장이 북새통을 이루고 명품 재고 판매에 나선 면세점 사이트가 마비되는 등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명품 불황 혹은 명품 불패. 실체는 무엇일까.
루이비통·에르메스도 ‘코로나 쇼크’

코로나19는 명품의 콧대마저 꺾었다. 세계 최대 명품 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184억유로(약 24조365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8%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6억유로(약 2조3476억원)로 68% 급감하며 ‘어닝 쇼크’를 기록했다. 

LVMH는 ▲루이비통 ▲크리스찬 디올 ▲셀린느 ▲지방시 ▲펜디 ▲로에베 등을 보유한 명품 그룹이다. 3분기에는 이 브랜드들이 포함된 패션·가죽 부문이 성장세를 보였으나 전체 매출은 하락했다. LVMH 3분기 매출은 119억유로(15조7605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7% 감소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경쟁사인 케어링 그룹도 마찬가지. ▲구찌 ▲생로랑 ▲보테가베네타 ▲알렉산더 맥퀸 ▲발렌시아가 등을 보유한 케어링 그룹은 올 상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9.6% 줄어든 53억8000만유로(7조1293억원)를 기록했다. 이어 3분기 매출도 1.2% 감소한 37억1800만유로(4조9269억원)에 그쳤다. 

그나마 선방했다고 평가받는 에르메스도 상반기엔 매출액이 24억8800만유로(3조2932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4%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5억3500억유로(약 7089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5% 하락했다. 글로벌 명품 시장에서는 예년의 매출 수준을 회복하려면 2022년이나 2023년까지 기다려야 할 것으로 전망한다. 

명품업계가 이처럼 타격을 입은 건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객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인 여행객의 수요가 줄었고 공항 면세점 사업도 타격을 받았다. 업계에 따르면 전세계 명품 매출의 20%는 공항 면세점에서 나온다. 

대기업 면세점 관계자는 “명품은 여행 지출 의존도가 높은 제품군이기 때문에 여행객 감소로 인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국내 면세점도 명품 브랜드 본사로부터 매입하는 규모를 축소했기 때문에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명품 시장은 ‘무풍지대’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의 해외명품 매출은 지난 3월을 제외하고 올 들어 꾸준히 두자릿수의 성장률을 보였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국내 명품 시장은 글로벌과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국내에서 백화점 매장과 오프라인 매장을 비롯해 공식 온라인 스토어 등의 형태로 사업을 운영 중인 명품 브랜드 한국 법인에겐 코로나19 여파가 미미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대다수 명품 업체들은 국내에서 매출 등 재무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유한회사이기 때문에 외부감사를 받지 않으며 감사보고서도 제출하지 않아 국내에서 얼마를 버는지 알 길이 없다. 그나마 주식회사 형태로 남아있는 명품업체의 실적도 내년에야 확인이 가능해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을 당장 알기 어렵다. 

다만 국내 주요 명품 소비 채널인 백화점 매출을 통해 이를 가늠해볼 수 있다.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의 해외명품 매출은 올해 들어 크게 증가했다. 3사 모두 코로나19가 본격화된 직후인 지난 3월에만 전년 대비 마이너스로 떨어져 주춤했을 뿐 꾸준히 두 자릿수 성장률을 보였다. 

심지어 명품 브랜드가 올해 코로나19 매출 감소분을 만회하기 위해 줄줄이 가격 인상에 나섰음에도 수요는 꺾이지 않았다. 샤넬은 올 들어 5월과 11월 두 차례 가격을 올렸고 ▲루이비통 ▲디올 ▲구찌 ▲프라다 ▲티파니앤코 등도 일제히 가격을 인상했다.

하지만 오히려 명품의 인기는 가격 인상을 앞두고 더욱 치솟았다. 조금이라도 낮은 가격에 구매해두려는 소비자가 몰리면서다. 백화점 개점과 동시에 샤넬 매장으로 달려가는 일명 ‘오픈런’ 현상이 나타난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인의 유별난 명품 사랑… 왜?
지난 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 샤넬 매장에 입장하기 위한 대기줄이 늘어섰다. /사진=김경은 기자

국내 명품 시장의 나홀로 호황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한국은 지난해 기준 매출 규모 세계 8위(127억2670만달러)의 명품 소비 강국이다.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인 유로모니터가 발표한 ‘코로나19 시나리오 예측’ 보고서에서도 한국은 전세계 10대 럭셔리 시장에서 가장 타격을 덜 받는 국가로 분석됐다. 

명품의 본고장인 프랑스와 이탈리아, 명품 소비 대국인 중국과 미국을 비롯해 영국·독일·스페인·캐나다·일본 등과 비교했을 때 한국인의 명품 사랑이 그만큼 유별나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글로벌 전체 럭셔리 시장이 전년 대비 18% 쪼그라드는 반면 한국 시장은 1% 감소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에도 한국인의 명품 사랑이 꺾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에서는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소비 욕구를 한꺼번에 해소하려는 ‘보복 소비’가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한다. 특히 해외여행과 신혼여행을 포기한 이들이 명품 구매로 눈을 돌렸다는 설명이다. 

2030세대가 명품시장에 유입돼 구매층이 두터워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과거 명품은 40대 이상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으나 최근에는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명품시장의 큰 손으로 떠올랐다. 부를 과시하는 ‘플렉스’ 문화가 퍼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최근 명품 시장에서는 자신의 만족을 위해 고가 상품이라도 선뜻 지갑을 여는 2030세대 구매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며 “코로나19에도 명품이 나홀로 호황을 누리는 이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