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작업실 옥상에서 '서울아까워센터 유기사물구조대'가 출동 준비를 마친 모습. 왼쪽부터 천근성, 박현주, 이석희, 이연우 작가. 2020.11.4/뉴스1© News1 이성철 기자 © 뉴스1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길거리에 유기된 사물을 제보해 주세요. 유기사물구조대가 출동해서 쓸고, 닦고, 보듬어서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쓰고 망가지면 버리는 게 당연해진 요즘, 서울의 거리에는 버려져 오랫동안 방치된 '사물'들은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금만 고치고 먼지만 닦아내면 새 주인을 만나 다시 사용될 수 있을 텐데…' 버려진 사물들을 보면 안타까움과 안쓰러운 감정이 섞인다.

서울 문래동에 모인 7인의 예술가·기획자들은 버려지는 물건에 대한 고민을 스스로 해결해 보기로 했다. 사망 선고를 받고 폐기되기를 기다리는 사물들을 구출해 새 주인을 찾아주기 위한 '유쾌한 작당'은 '서울아까워센터 유기사물구조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지난 4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창작촌에서 유기사물구조대원 7명 중 천근성, 박현주, 이연우, 이석희 작가 4명을 만났다. 생명이 꺼져가는 유기사물들을 구조하는 일을 하기에 구조대는 소방 구조대처럼 현광 주황색 구조복을 맞춰 입었다. 청소도구와 수리도구가 담긴 구조카트도 함께했다.

◇"사물을 인간 곁에 오래 머물게 하자"는 고민에서 시작

유기사물구조대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물건을 버리지 않고 오래 사용하게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이런 고민은 사소한 '부상'을 입고 버려진 사물들을 구조하자는 아이디어로 발전을 했고 서울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 '2020 서울을 바꾸는 예술'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10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지난 10월25일 구조대가 영등포구 도림동 일대에 첫 출동해 구조작업을 펼치자 지나가던 행인들이 하나둘 관심을 보이며 지켜보기 시작했다. 어디서 온 사람이냐고 묻기도 하고 '좋은 일을 한다'라며 커피를 타다 주기도 했다. 구조를 지켜보던 한 할머니는 수리를 마친 TV받침대가 필요하다며 집으로 가져갔다. 마음에 드는 가구를 공짜로 구해 기분이 좋아진 할머니는 동네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 모아 자랑을 하기도 했다.

유기사물구조대의 활동은 3단계로 정의할 수 있다. 먼저 7명의 멤버 중 일부가 수리가 필요한 물건이 유기된 장소를 사전 답사를 하고, 나머지 멤버들이 필요한 도구를 챙겨 본격적인 수리·청소·재디자인을 한다. 수리 중에 구경꾼들이 모여들면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도 곁들인다.

수리를 마치면 수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쇼룸처럼 전시를 한다. 수리 중에 누군가 물건을 가지고 가고 싶어 한다면 물건을 옮기는 것도 도와준다. 현장에서 물건을 가져가는 사람이 없으면 중고물품을 거래하는 앱인 '당근마켓'에 물건의 사진과 위치를 올려 새 주인을 찾는다.

마지막 단계는 '도주'다. 버려진 물건을 멋지게 수리하고 쿨하게 도주하는 것이다. 다만 유기사물구조대가 도주 전에 하는 마지막으로 하는 작업이 있다. 수리한 사물을 그 본연의 용도에 맞게 한번 사용해 보고 떠나는 것이다. 수리한 물건이 테이블이라면 커피라도 한잔 그 테이블에서 마셔보고 떠난다.

이연우 작가는 수리된 사물이 새 주인을 찾지 못하면 결국 폐기가 될 텐데 사물이 만들어진 본연의 모습 그대로 사용을 해봄으로써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0월25일 유기사물구조대가 '당근마켓'을 통해 무료 나눔한 가구에 대해 한 시민이 '세상이 아직 살만한 이유는 여러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감사함을 전했다. © 뉴스1

◇'자투리'에 대한 연민은 결국 인간에 대한 연민
구조대 7인의 멤버는 '피스오브피스'(piece of peace)라는 창작자들의 콜렉티브 그룹을 통해 인연을 맺었다. 약 9년 전 천근성 작가가 문래동 3가에 연 작업실에 예술가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자리를 잡았다. 사진, 시각 디자인, 인테리어, 문서작업 등 각각의 특기가 달랐던 이들이 공통으로 관심이 있었던 것이 '사물과의 관계'였다. 7인 모두 사람과 관계를 맺은 사물은 어떻게 하면 오래 사용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많았다.

'어떻게 이렇게 모이게 됐냐'는 질문에 천 작가는 "(영화) 오션스일레븐처럼 각자 특기가 있어서 그런 것들을 필요로 하다 보니 모이게 됐다"고 말했다. 같은 이연우 작가 "슬라임처럼 합쳐졌다"라며 같은 관심사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같이 활동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피스오브피스, 즉 '평화의 조각'이라는 이름도 '조각'(개인)들이 모여 평화를 이룬다는 뜻으로 지었다.

이런 관심을 바탕으로 지난해 처음 기획한 프로젝트가 '자투리 잡화점'이었다. 자투리 잡화점은 창작촌 주변의 예술가들이 창작 활동을 하고 남은 나온 '자투리' 재료들을 기부받아 소량의 재료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프로젝트다. 올해는 '메이커스 연장 도서관'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연장 도서관은 창작촌 주변에 창작자들이 연장을 다 갖추고 있지 않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서 드릴, 그라인더, 용접기, 컴프레서 등 연장들을 대여하는 도서관이다.

피스오브피스의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개념은 버려지는 '자투리'에 대한 연민이다. 천 작가 "자투리는 가공하고 남은 찌꺼기 같은 것인데 그냥 버리면 쓰레기이지만 배치만 달리해서 필요한 게 되면 더 이상 자투리가 아닌 게 된다"라며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의 위치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면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된다"고 말했다.

◇버려진 사물 수리하고 지켜보는 것도 "예술"

'버려진 물건을 다시 쓰자'는 목적성이 있어 보이는 같지만 천근성 작가는 이번 유기사물구조대 프로젝트가 어떤 확실한 목적을 강제하는 '캠페인'이 아닌 '예술 활동'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캠페인이라면 '꼭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조건이 붙겠지만 예술을 그렇지 않다고 표현한 천 작가는 참여하는 예술가들도 유쾌하게 일을 하고 이를 행인들이 신기하고 즐겁게 바라보지만 "결국 행위에 대한 해석은 각자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실제 프로젝트에 대한 소회는 참여한 멤버들 마다 제각각이었다. 천 작가의 경우 '사물'의 모습에서 사람을 그려냈다. 그는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곧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된다"라며 "사물을 하찮게 대하지 않으면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들을 대하는 태도도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연우 작가는 '자본주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쉽게 쓰고 버리는 것을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은 것 같다"라며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물이라도) 나의 삶에 들이기로 했으면 책임을 지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털어놨다.

박현주 작가의 경우 "눈길을 끌고 한번 더 생각해 보게 하는 게 중요하다"라며 이런 활동을 지켜보는 시민들이 물건을 사용하고 버리는 행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유기사물구조대는 서울문화재단의 지원 사업이 마무리되는 2월 이후에도 버려진 사물들을 보듬는 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다. 주변에 버려진 물건이 너무 많아 일단 문래동 주위를 위주로 구조 활동을 하고 있지만 서울 전역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는 것도 목표다. 이연우 작가는 "좀 더 발전 시켜 '유기가구점' 같은 걸 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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