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업계 근무 실태에 관한 취재 과정에서 17년차 택배기사에게 들은 말이다. 정부 관계자가 택배기사 작업장소인 서브터미널과 대리점을 다니며 쓸데없는 질문만 늘어놓았다는 얘기였다. 그는 정부의 실태 점검을 ‘헛짓’이라고 폄하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정부의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이 나왔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번 대책은 헛짓의 결과물이었다. 대부분이 권고 수준에 그쳤고 강제할 수 있는 제재 수단은 마련되지 않았다. 주요 사안은 내년에 논의하겠다고 했다.
이번 대책은 택배기사의 장시간·고강도 근무 시간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현재 주 6일제인 근무 방식을 주 5일제로 바꾸고 밤 10시 이후 심야배송은 제한할 것을 권고했다. 앞서 CJ대한통운·롯데·한진택배 등 택배사가 내놓은 자구책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수준이다.
무엇보다 정부 대책엔 문제의 발생 원인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지 않다. 택배기사 과로 문제는 수익구조에서 기인한다. 택배요금은 판매자·택배기사·본사·대리점 4자가 나눠 갖는다. 이 과정에서 택배기사에게 돌아가는 몫이 지나치게 적다 보니 기사는 일정 수준의 소득을 유지하기 위해 배송 물량을 늘릴 수밖에 없다.
배송 1건당 택배기사의 몫은 고작 800원. 여기서 평균 10~15%, 최대 30%를 대리점에 수수료로 지불한다. 대리점 수수료와 부가세를 제외하면 택배기사가 손에 쥐는 돈은 건당 500원 수준에 불과하다. 차량 구매와 유지비 및 경비 등은 별도 본인 부담이다.
택배기사 배송 수수료를 늘리려면 비정상적인 지출을 줄여야 한다. ‘백마진’이 대표적이다. 백마진은 택배업계가 대형 화주(판매자)와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도입한 일종의 리베이트다. 2500원 중 판매자에게 다시 돌려주는 백마진이 600원이나 된다. 이런 불공정 관행을 바로잡지 않는 이상 택배비 인상은 효과를 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수익구조 개선이 아닌 근무시간 단축이라는 대책을 내놨다. 택배 기사의 과로사 추정 사망이 이어지자 일단 과로를 막고 보면 되겠다는 단순한 의도가 읽힌다. 정부가 현장에 나가 벌인 실태조사가 ‘헛짓’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백마진에 관해서는 이제야 조사를 벌이겠다고 한다.
현장엔 볼멘소리만 가득하다. ‘일한 만큼 버는’ 택배기사의 근무시간을 줄이면 그만큼 소득이 감소할 거란 계산에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택배비 인상을 검토하겠단 방침이다. 하지만 수익구조 개선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판매자와 택배회사만 배 불리게 되고 만다. 결국 택배기사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거의 없다.
“이제 겨우 먹고살 만 한데…. 근무 조건만 좋아지고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정부 대책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정부 대책이 나온 당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의 페이스북에 택배기사가 남긴 댓글이다. 이 장관은 “고민하겠다”고 답변했다. 부디 후속 대책엔 고민의 흔적이 드러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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