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의 한 백화점 가전매장에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세탁기가 진열되어 있다. / 사진=뉴시스 조성봉 기자
미국 가전업체 ‘월풀’이 자국서 또다시 한국산 세탁기에 딴지를 걸고 나섰다. 내년 2월 종료를 앞둔 ‘세이프가드’를 연장해 외산 세탁기에 대한 제재를 이어가야 한다는 청원서를 현지 정부에 제출한 것. 외산 세탁기가 미국 내 세탁기 산업 생태계를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현지 세탁기 점유율 1·2위를 수성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한국산 제품에 대한 몽니다. 하지만 당사자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여유롭다. 어째서일까.

삼성·LG가 두려운 월풀… 세이프가드 연장으로 해결될까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최근 가정용 대형세탁기(LRW) 세이프가드 연장에 대한 위원회 투표를 진행해 ‘찬성’ 결과를 도출했다. 세이프가드란 특정 물품의 수입이 늘어나 자국 산업에 중대한 손해가 있을 경우 그 품목의 수입을 제한하는 조치다.


이번 찬반투표는 현지 가전업체인 월풀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앞서 월풀은 지난 8월 가정용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를 연장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서를 ITC에 제출했다. 예정대로라면 내년 2월 세이프가드가 종료되지만 이를 연장해 자국 세탁기 산업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ITC는 월풀의 의견을 수용해 만장일치로 찬성을 결정했다. ITC는 찬성 이유에 대해 “미국 대형 가정용 세탁기 산업에 대한 구제 조치가 계속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당초 미국에서 외산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가 도입된 것도 월풀 때문이다. 2017년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이 해외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가정용 대형 세탁기가 자국 산업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다며 세이프가드를 청원한 것.


당시 한국 정부와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가전업계는 ITC 주관으로 열린 공청회 등에 참석해 세이프가드가 발동될 경우 혁신적 제품을 공급하는 기업 활동을 방해함으로써 결국 미국 소비자와 유통업계가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경우 자사가 내놓은 세탁기 제품은 월풀이 생산도 하지 않은 혁신제품으로 해당 제품들 때문에 월풀이 손해를 입는다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부당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결국 자국 기업인 월풀의 손을 들어줬고 2018년 2월부터 외국으로부터 수입되는 연간 120만대의 외산 세탁기 수입 물량에 대해 ▲첫해 20% ▲2년째 18% ▲3년째 16% 등의 관세를 추가로 매기고 초과 물량에 대해선 ▲첫해 50% ▲2년째 45% ▲3년째 40%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세이프가드를 발동한 바 있다.

원래대로라면 이 같은 조치는 내년 2월 종료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ITC가 다시 월풀의 손을 들어주면서 연장 가능성이 높아졌다.

ITC는 조만간 세이프가드 관련 조사와 결정 등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해 백악관에 전달할 예정이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를 바탕으로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보호무역주의와 미국우선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ITC 권고를 수용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한국업체 영향 “글쎄”… 美 현지서도 삼성·LG 우위

하지만 세이프가드가 연장되더라도 국내업체가 받을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탁기 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치가 발동된 직후 적극적인 선제대응을 통해 규제의 지대를 빠르게 벗어났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세이프가드 발동에 대응해 2018년 상반기 가동 예정이던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뉴베리 가전 공장을 2017년 12월부터 조기 가동했다. 세이프가드의 관세 부과 대상이 외국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들어오는 제품이어서 현지 생산물량을 확대해 피해를 최소화한 것이다. LG전자도 2018년 8월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연간 120만대 규모의 세탁기 공장을 착공해 지난해 5월 준공하며 현지 생산을 확대했다.

발빠른 국내업체의 대처로 외산 세탁기에 타격을 주려던 월풀의 계획은 크게 빗나갔다. 세이프가드 조치 시행을 앞두고 당시 마크 비처 월풀 최고경영자(CEO)는 “의심할 여지 없이 월풀에 호재”라며 우위를 자신했지만 현지 시장에서 오히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제품이 승승장구하는 형국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랙라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미국 세탁기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 20.7% ▲LG전자 16.7% ▲월풀 16.3% 등의 순이다. 미국 유력 소비자 전문매체인 ‘컨슈머리포트’(CR) 등 현지 매체 또한 월풀보다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 세탁기 제품의 성능을 더욱 높게 평가하고 있다. 미국 소비자 역시 한국 세탁기를 더욱 신뢰한다는 조사 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월풀의 실적도 한국기업에 뒤처진다. 올 3분기 월풀의 영업이익은 5억9000만달러(6655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8% 감소했다. 반면 LG전자는 9590억원으로 역대 3분기 가운데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월풀이 이번에 세탁기 세이프가드 연장을 요청한 것도 이처럼 실적 부진과 인지도 하락이 이어지는 상황이 제도 종료로 인해 더욱 가속화할 것을 우려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가전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업체는 이미 미국에서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고 프리미엄 제품을 비롯한 혁신 기술을 앞세워 현지 시장에서 입지를 탄탄하게 갖추고 있다”며 “세이프가드 조치가 연장되더라도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