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김원효는 “내 가족을 실전에서 웃기는 분들이 많지 않다. 장모님한테도 ‘점숙 씨’ 이러면서 개그를 할 수 있는 제 직업이 좋았다”라고 말했다.
이에 김학래는 “저건 성격이고 성품이다. 저희같은 사람은 집에 가면 과묵한데, 원효는 안 그렇다. 보고 있으면 가정사를 배운다”라고 칭찬했다.
또 정점숙 씨는 “마음에도 없는데 계속 (결혼하겠다고)말하니까, (딸 키우면서)32세 때까지 생활비 보낸 게 얼만데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4000만원이다’ 이러니까 ‘그거 내가 벌어서 주면 되지’ 이러더라. 돈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하더라”라고 결혼을 결국 허락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또 정점숙 씨는 “마음에도 없는데 계속 (결혼하겠다고)말하니까, (딸 키우면서)32세 때까지 생활비 보낸 게 얼만데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4000만원이다’ 이러니까 ‘그거 내가 벌어서 주면 되지’ 이러더라. 돈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하더라”라고 결혼을 결국 허락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이날 정점숙씨가 뇌출혈로 쓰러진 당시를 회상하며 "앞이 캄캄했다. 아이들에게 짐만 될 것 같아 서러웠다"고 했다. 정점숙씨는 그 당시에 대해 "청송에 혼자 있었다. 전자레인지를 드는데 머리에서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지간히 아프면 아프다고 하기 싫었는데, 그 순간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싶더라"라고 했다.
이어 "그 몇 분 사이에 휴대폰이 반 밖에 안 보이더라. 진화에게 전화를 했는데, 일을 하느라 못 받았다. 여기저기 전화를 하는데 안 받더라. 나중에 아들과 연락이 됐다. 차비만 들고 안동에 가서 응급 처치를 해야 한다고 해서 택시를 타고 안동에 갔다. 이후 진화, 원효가 연락이 돼 안동 의사들과 통화를 하곤 했다"며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김원효는 "외상이 없어 티는 안 났는데, 나중에 말투도 어눌해지더라. 퇴원을 하고, 우리 집 비밀번호를 가르쳐 주는데 숫자 4개를 못 외우시더라. 너무 심각하게 느껴졌다"고 장모님이 후유증을 겪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원효는 "나중엔 웃기더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어머니는 더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았다. 우리가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재미있게 하자 싶더라. 모르면 모르는 대로 웃으며 놀리기도 했다"고 했다. 이에 MC들은 "개그맨 사위이고, 마음이 따뜻한 남자라 가능했던 것 같다"며 감탄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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