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영책임자 처벌 피할 우려 여전━
고용노동부의 ‘2020년 산업재해 발생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 수는 모두 2062명으로 이 가운데 882명이 사고로 숨졌다. 사업장 규모별로 분류해보면 ▲300인 이상 37건 ▲50~299인 131건 ▲5~49인 402건 ▲5인 미만 312건이 발생했다.
노동부는 정기감독을 통해 노동 환경을 점검하고 있지만 현장 재해사고는 매년 반복되고 있다. 이런 근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부는 중대재해법 시행령을 내년 1월 도입할 예정이다. 근로자 사망 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과 10억원 이하 벌금, 법인에는 50억원 이하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상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이다.
하지만 최근 건설 현장에서 잇따라 사고가 발생하자 노동계와 경영계는 중대재해법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계는 여전히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부분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기준 전체 산재 사망사고의 35%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5~49인 사업장에서 이 비율은 26%다. 현 법률대로라면 전체 산재 사망사고의 35%는 앞으로도 계속, 61%는 3년 동안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중대재해법 제정 당시 실무자격인 공무원의 처벌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계속 나왔지만 법안에서는 빠진 상태다. 민주노총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관계자는 “지난해만 해도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고 사망자가 300인 이상 기업보다 많이 나왔다. 중대재해법은 노동자 생명에 차별을 둔 것”이라며 “마리나오션리조트 붕괴사고는 인·허가 단계에서부터 설계·시공·감리·유지관리 등 총체적 부실로 발생한 참사였다. 사고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실무 담당 공무원들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영책임자가 처벌을 피할 가능성이 있는 점도 노동계가 우려하는 대목이다. 중대재해법에서 경영책임자를 ‘사업을 대표하거나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과 ‘중앙행정기관의 장, 지방자치단체의 장’으로 본다. 노동계 관계자는 “최근 기업은 중대재해 발생 시 최고경영자가 아닌 안전보건이사만 처벌받을 수 있도록 이사회를 꾸리는 등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
처벌 위주로는 근본적 해결 한계━
광주 학동 재개발구역 철거 건물 붕괴 사고 이후 정치권에선 중대재해법을 강화하자는 개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대재해 사고 발생 시 CEO(최고경영자) 등에 대한 처벌 완화를 주장하는 경영계 입장에선 부담이 커진 셈이다.
경영계는 처벌 만능주의 법안만으론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기업 처벌 강화로 ‘희생양 만들기’는 오히려 혼란만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경영계는 경영책임자 등의 형사처벌에 대해서도 형벌 수준을 하한형 유기징역(1년 이상)에서 상한 설정 방식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벌금 수준 하향과 징벌적 손해배상책임 3배 이내 제한도 제안하고 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규제 대상을 넓히거나 처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대응해 왔다”며 “건설산업기본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등 여러 규제가 있지만 이런 법안이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주장이다. 이어 “왜 안전 관련 법안이 현장에서 응용되지 않는지 원인을 진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개선책을 내놔야 한다”며 “처벌을 강화해야 재해가 준다는 식의 대응은 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영책임자가 산업안전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는 데 중대재해법은 의미가 있다”면서도 “법과 노동현장에서 괴리가 발생하는 것은 문제”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제재에 중점을 둔 법 개정 안전 대책과 지원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그동안 발생한 사고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는 태도가 필요하다”며 “최근 고 이선호씨 산재사망사고는 고 김영균씨 사고로부터 전혀 배우지 못해서 발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기업을 안전 불감증으로 몰고 갈 것이 아니라 수범자가 현장에서 준수할 수 있고 예측 가능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며 “명확한 규정과 중소업체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 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