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 출신 32명이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운동 유공자로 포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세브란스 출신의 독립운동가는 60여명 이상이다. /사진=세브란스
▶글 쓰는 순서
①"렉라자만 봐도…" 독립운동가 유일한 박사의 정신
②'살릴活·생명命·물水' 활명수에 담은 동화약품의 독립운동
③나라를 살리는 의사 '세브란스 독립운동가'



우리나라에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양성된 의학교가 있다. 바로 세브란스다. 세브란스는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유일한 의료기관으로 교수와 의사·학생·직원·간호사 등 모든 구성원이 모두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독립선언문을 배포하는 등 3·1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2019년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운동 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세브란스 출신은 김필순을 포함해 20명의 의사와 간호사·교직원 등 총 32명에 달한다. 세브란스를 거쳐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인물은 60여명이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교실 의사학과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세브란스 독립운동사'를 발간했다.

연세대 의과대학의 전신인 제중원에서 1908년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 7명이 탄생했다. 이들은 대부분 사람을 살리는 의사의 길을 걷기보다 나라를 살리는 의사의 길을 선택했다. 그중 한 명이 김필순(金弼淳, 1878~1919)이다. 김 선생은 독립운동가인 김규식의 매제이자 김마리아의 삼촌이기도 하다. 김 선생은 제중원 재학 중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세브란스 병원에 재직하면서도 독립운동가를 위해 자신의 집을 제공하며 안창호(安昌浩, 1878~1938) 선생과는 의형제를 맺었다. 1907년에는 신민회를 조직해 해외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동참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중국으로 건너간 뒤 독립운동 기반 마련과 북제진료소 개원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본인 의사에 의해 독살됐다.
1908년 세브란스병원 의학교 졸업식에서 (왼쪽부터) 김필순·홍석후·신창희·박서양·주현칙·김희영·홍종은 의사가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제중원 사진이다. /사진=세브란스
우리나라 최초 의사가 전파한 독립운동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 7인은 김필순에 이어 홍석후·신창희·박서양·주현칙·김희영·홍종은이다. 김필순을 비롯해 신창희·주현칙·박서양·김희영 선생은 독립운동을 펼치다 사망했다. 이들의 활동은 메아리처럼 퍼져 많은 의사와 간호사 등이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신창희 선생은 상해임시정부 교통부 요원으로 군자금을 마련했다. 주현칙 선생은 민족운동 단체인 흥사단 활동 이후 상해에 삼일의원을 개원하고 한국인을 치료했다. 박서양 선생은 간도에 학교를 세워 조선어를 가르쳤다.
김규식과 이태준 선생도 있다. 김규식은 독립투사를 양성하기 위한 비밀 군관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이태준과 함께 몽골에서 활동했다. 이태준은 제중원 재학 당시 안창로의 권유로 신민회 자매단체인 청년학우회에 가입했다. 국내에서 자금이 들어오지 않으면서 군관학교가 무산되자 1914년 몽골 고륜(울란바타르)에 병원인 동의의국을 개원해 독립군을 도왔다. 동의의국의 뜻은 '항일독립운동의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의 병원'이다. 따라서 이 병원은 독립운동가들의 휴식처이자 연락거점이 됐다.

이태준은 1920년 항일단체에게 헝가리 출신 폭탄기술자를 연결해 주려다가 일본군 장교와 손잡은 러시아 백위파부 대원에 의해 피살됐다. 이후에도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세브란스 출신의 의사들이 늘어나면서 학생운동으로까지 이어진다. 세브란스 학생운동은 식민지 치하에 있을 때는 독립운동을, 해방 이후에는 정치적·사회적 움직임에 선발대 역할을 하는 한국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