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구 대표 후원문화 '나눔1%의 기적'에 동참하는 김남수(34) 수신당 대표의 어린 시절은 '가난'이라는 말로 다 설명되지 않는다. 교통비가 없어서 작은 몸으로 먼 길을 걸어야 했고 학교에선 빌려 쓰는 일이 익숙했다.
학용품이 필요해도 말을 꺼내지 못하던 소년에게 어느 날 뜻밖의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인천에 거주하던 김 대표에게 동사무소(현 주민센터)에서 "익명의 기부자가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날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김 대표는 "끝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던 분에게서 6개월 동안 월 10만원씩 도움을 받았다"며 "지금 와서 액수만을 보면 크지 않았지만 학용품 하나 마음 놓고 못샀던 어린 날의 나에게는 세상을 다시 보게 한 돈이었다"고 말했다.
고된 성장 환경은 그를 일찍이 어른으로 만들었다. 미술을 배우고 싶었지만 꿈을 뒤로한 채 어린 나이에 생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가 처음으로 선택한 건 외식업이었다. '식당에서 일하면 밥은 먹을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었다. 이후 요리보다 제과·제빵에 흥미를 느끼면서 베이커리의 길을 걷게 됐다. 열여덟살, 첫 직장에서 받은 월급 85만원 중 3만원을 기부한 것이 인생 첫 나눔이었다.
이후에는 기부 금액을 늘려갔다. 기부단체의 횡령 논란으로 충격을 받아서 잠시 멈춘 적은 있었지만 다른 단체(푸드뱅크·세이브더칠드런·대한적십자사·해벗누리·사랑의열매 등)들로 기부를 이어갔다. 그가 단체들을 통해 내는 기부금은 연 7000만원에 달한다.
━
따뜻한 도움의 손길, 누군가에게 힘이 되길━
십여년 동안 하루 3~4시간씩 잠을 자며 빵을 만드는 데 몰두해 온 그의 열정은 가게를 빠르게 성장시켰다. 현재 김 대표를 포함해 15명이 함께 일한다. 수신당은 남가좌동의 소문난 베이커리로 자리잡아 지난달부터 확장 공사에 들어갔다.
수신당에는 어르신 손님이 많다. 김 대표의 기억에 가장 깊이 남은 장면은 한 여름날의 풍경이다. 80대로 보이는 할머니 두 분이 팥빵과 곰보빵을 사서 밖에서 드시겠다고 했다. 더운 날씨여서 안으로 들어오시도록 권유했지만 할머니들은 "젊은이들 있어서 나이 든 사람이 들어가면 불편해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김 대표는 "평생 기억에 남을 손님"이라고 회상했다.
수신당의 주 고객층은 평균 연령 40대 후반을 훌쩍 넘는다. 쌀가루를 사용하고 반죽과 발효를 천천히 거치는 '슬로푸드' 방식 덕분이다. 소화가 편한 빵을 찾는 어르신들이 자연스럽게 모인다. 빵값을 쉽게 올리지 못하는 이유도 이런 이유다. 김 대표는 "원가 대비 최대한 싸게 판매하려고 한다"며 "빵 한 끼로만 하루를 버티는 분들이 많다. 지역과 함께 가야 가게도 오래 간다"고 강조했다.
━
"기부, 돌고 도는 일"━
김 대표는 기부 내역과 사용처를 투명하게 공유받는 경험이 사업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다고 소개했다. 그는 "서대문구의 복지 예산이 지속해서 늘고 있다. 진정으로 사람을 위한 정책이라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서대문구에 따르면 올해 사회복지 예산은 4600억원으로 전년보다 200억원가량 증가했다.
김 대표는 기부를 거창한 결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용기'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기부는 사실 용기가 부족해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면서 "크고 작음의 문제는 아니다. 천원이라도 받는 입장에서는 매우 크다"고 독려했다.
기부란 자신이 받았던 도움을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건네는 일이라고 김 대표는 정의했다. 사회의 도움을 받은 아이가 성장해 다른 누군가를 돕는 것이 기부의 선순환이다. 김 대표는 "1%가 모여 100%가 된다"면서 "사람도 사회도 그렇게 성장하는 것이라고 믿는다"며 웃었다.
<저작권자 ©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 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