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들이 화려한 '대화형 AI'와 가상 세계의 데모 영상에 열광할 때, 팔란티어(Palantir)는 '현장'에 뛰어들었다. 포탄이 빗발치는 우크라이나의 참호, 거대한 크레인이 움직이는 울산의 조선소까지. 이들의 관심사는 가상 공간이 아닌 '물리적 현실'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이 독특한 전략은 적중했다. S&P 500 지수에 편입됐고, 2025년 4분기 기준 미국 상업 매출은 전년 대비 137% 성장했다. 하지만 팔란티어는 단순한 매출 성장을 넘어 더 거대한 비전을 제시한다. 바로 AI가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조직을 스스로 운영하는 단계, 즉 '자율 기업(Autonomous Enterprise)'의 실현이다.
전장의 '지휘 통제' 기술을 기업의 '경영'에 어떻게 이식했는지, 그리고 그들이 꿈꾸는 '자율 기업'이라는 미래가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완성되는지 심층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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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 엑셀 밖으로 나온 데이터, 현실을 '원격 조종'하다━
자율 기업으로 가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현실 세계를 디지털로 완벽하게 복제하고 제어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팔란티어 시스템의 핵심 경쟁력은 흩어진 데이터를 통합해 조직의 '디지털 쌍둥이(Digital Twin)'를 만들고, 모니터 속의 클릭을 실제 무기와 공장의 움직임으로 연결하는 '온톨로지(Ontology)' 기술에 있다.대부분의 데이터는 암호와 같다. 국방부의 '자산 코드 T-72, 좌표 38.5'나 공장의 '부품 #1023, 위치 X-9'는 현장 지휘관이나 작업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팔란티어의 온톨로지는 이를 '적군 T-72 탱크' 혹은 'A350 항공기의 랜딩기어'라는 명확한 사물(Object)로 번역한다. 복잡한 엑셀 표를 걷어내고, 전장의 피아 식별 정보나 공장의 부품 재고가 통합된 하나의 '디지털 실체'를 지도 위에 띄우는 것이다.
◇ 단순 알림을 넘어선 '분석과 제안'... 맥락(Context)의 힘
데이터를 객체로 정의한 후에는 그 위에 '맥락'을 입힌다. 전장에서 '적 탱크'를 발견하면 단순히 위치만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거리 내 아군 자주포의 상태, 드론 배터리 잔량, 예상 민간인 피해까지 실시간으로 연결하고, 공장에서는 '랜딩기어 고장' 신호에 내일의 비행 스케줄, 정비사 근무표, 창고 재고 데이터를 결합한다. 이렇게 연결망이 구축되면 시스템은 "지금 A 포대에서 발사하면 90% 확률로 격파 가능"하다거나 "지금 부품을 교체하지 않으면 내일 비행기가 결항된다"는 구체적인 '분석과 제안'을 내놓는다.
◇ 보는 것을 넘어 '움직인다'... '단순 현황판'이 아닌 '중앙 통제실'
기존 데이터 도구가 'CCTV'라면 팔란티어는 '리모컨'이다. 단순히 현황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현실에 직접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 장교나 공장 관리자가 화면에서 [승인] 버튼을 누르면, 이 신호는 즉시 무기 통제 시스템이나 구매 시스템으로 전송되어 실제 드론을 출격시키거나 물류 트럭을 배차한다. 분석과 실행이 한 화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 스스로 진화하는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
시스템은 단순히 명령을 내리고 끝내지 않는다. 그 결과를 다시 학습한다. "A 지형에서 B 드론 작전 실패"라는 데이터가 쌓이면, 다음번엔 "C 드론 투입 권장"으로 방책을 수정한다. 조직의 경험이 쌓일수록 온톨로지는 점점 더 고도화된다. 더 나은 온톨로지는 곧 더 똑똑한 솔루션을 의미한다. 쓰면 쓸수록 성능이 개선되는 선순환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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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화의 전제 조건... 전장에서 검증된 '신뢰'와 '보안'━
1단계에서 '리모컨'을 쥐어줬다면, 2단계는 AI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과정이다. 하지만 브레이크 없는 자율주행차를 탈 수 없듯, 완벽한 보안 없이는 자율화도 불가능하다. 팔란티어는 이미 극한의 전장 환경에서 독보적인 신뢰를 입증했다.가장 먼저 해결한 것은 '데이터 유출' 공포다. 팔란티어는 '뇌(Brain)'와 '기억(Memory)'을 철저히 분리하는 아키텍처를 적용했다. 고객사의 기밀 데이터는 외부 LLM(거대언어모델) 학습용으로 절대 넘기지 않는다. LLM은 오직 추론하는 도구로만 빌려 쓸 뿐, 기업의 핵심 자산인 데이터는 팔란티어의 보안망 안에 격리된다.
또한, 보안의 적은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에도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았다. 시스템에는 군사 작전 수준의 '권한 제어(ACL)'가 내재화되어 있어, 일반 병사가 "현재 가용 핵전력 현황"을 물으면 AI가 즉시 답변을 거부한다. 누가 묻든 똑같이 답하는 일반 챗봇과 달리, 사용자의 권한을 먼저 검증함으로써 내부자에 의한 보안 사고까지 원천 차단하는 것이다.
이 모든 기술은 인터넷이 끊긴 심해의 잠수함이나 보안이 생명인 벙커의 폐쇄망에서도 완벽하게 작동한다. 자체 배포 솔루션 '아폴로(Apollo)' 덕분이다. 빅테크 기업들이 침범할 수 없는 '데이터 주권'을 지켜내는 이 강력한 보안 인프라가 이미 전장에서 검증되었기에, 국방부와 기업들은 안심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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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AIP 위에서 펼쳐지는 '자율 기업(Autonomous Enterprise)'의 완성━
◇ AIP: 자율 기업을 위한 '운영체제(OS)'
많은 기업이 챗봇을 도입하지만 실패하는 이유는 LLM이 회사 내부 데이터를 모르거나, 실제 시스템을 건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팔란티어 AIP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플랫폼이다. 1단계에서 만든 '온톨로지(기업의 현실)'에 'LLM(AI의 지능)'을 결합해, AI가 기업의 자산(Asset)과 도구를 이해하고 마음대로 갖다 쓸 수 있게 만든다. 이는 AI가 단순한 말동무가 아니라, 기업이라는 거대한 기계를 움직이는 운영체제가 됨을 의미한다.
◇ 행동하는 에이전트... "말로 지시하면, 알아서 실행한다"
AIP 환경에서는 복잡한 코딩이나 클릭이 필요 없다. 전장의 지휘관이 "서부 전선 탄약 재고를 유지하라"고 말로 명령하면, AIP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보급 에이전트'를 즉시 생성하거나 호출한다. 공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생산에 차질 없게 하라"는 공장장의 한마디에 '자재 에이전트'가 작동한다. AIP는 인간의 추상적인 언어를 실제 ERP 시스템이나 무기 체계가 이해할 수 있는 명령어(Code)로 변환해, 가상 공간의 대화를 물리적 현실의 '행동'으로 완결 짓는다.
단순히 하나의 지시만 따르는 것이 아니다. 생성된 에이전트들은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서로 소통하며 목표를 달성한다. 이를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이라 한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전장의 '킬 웹(Kill Web)'이다. '정찰 에이전트'가 적을 식별하면 즉시 옆에 있는 '타격 에이전트'에게 알리고, 타격 에이전트는 다시 '통신 에이전트'를 통해 포대와 연결한다. 인간 지휘관은 복잡한 통신 절차 없이 최종 승인만 내리면 된다.
산업 현장인 리오 틴토 광산에서도 '운행 에이전트'와 '정비 에이전트'가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수십 대의 무인 열차를 24시간 자율 주행시킨다.
사무실도 예외는 아니다. AIG 보험사는 무려 85개의 에이전트를 투입했다. 서류를 분석하는 에이전트, 리스크를 계산하는 에이전트들이 유기적으로 협업한 결과, 3주가 걸리던 심사 업무는 단 1시간 만에 완료됐다.
◆특별취재팀=제도혁신연구소 이상언 소장·이무영 부소장, 정치경제부 김인한·김성아 기자, 산업1부 최유빈 기자, 증권부 이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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