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근 기획예산처 장관 직무대행 차관이 1월2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열린 '2026년 제1차 기금자산운용정책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기획예산처
정부가 연기금의 기금운용평가 기준에 코스닥 지수를 반영하면서 수십 년간 코스피 중심으로 굳어졌던 연기금 포트폴리오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코스닥을 외면하면 평가 수익률이 벤치마크를 밑도는 구조로 바뀐 만큼, 연기금과 공제회들의 포트폴리오 재편은 이제 선택이 아닌 과제가 됐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기획예산처는 지난 1월 말 기금자산운용정책위원회를 열고 올해 기금 자산운용 기본방향과 기금운용평가 지침 개정안을 확정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국내주식형 평가 벤치마크다. 국민연금을 제외한 대형·중소형 기금의 경우 기존 '코스피 100%' 기준에서 코스닥150 지수를 5% 섞은 혼합 방식으로 전환된다. 코스닥에 투자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벤치마크 대비 성과가 나빠지는 구조다.

기획처는 그간 연기금의 코스닥 투자가 지나치게 저조했다는 점을 이번 개편의 이유로 들었다. 2024년 기준 67개 기금의 코스닥 투자 규모는 5조8000억원으로 전체 국내주식 투자의 3.7%에 불과하다. 반면 같은 기간 해외투자 비중은 43.6%까지 커졌다. 이번 지침 개정에서 투자 다변화 예시 항목에 코스닥·벤처 투자가 새로 들어간 배경이다. 벤처투자 배점도 기존 1점에서 2점으로 올렸고, 신규 벤처 투자의 초기 3년 수익률은 평가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벤처투자 배점 확대는 국민연금을 포함한 전체 기금에 적용된다.


연기금들은 내부 검토에 들어갔다. 현재 코스닥 비중이 2~3% 수준에 머무는 기금이 대부분인 가운데, 일부는 국내 주식시장 내 코스닥 시가총액 비중(12%)에 맞춰 10%까지 올리는 방안도 테이블에 올라온 것으로 파악됐다. 한 연기금 담당자는 "코스닥 비중 확대에 따라 운용 정책 전반이 변경될 여지가 있어 정부 방침을 모니터링하는 단계"라며 "기금 수익성과 시장 상황을 함께 보겠다"고 말했다.

정부 평가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공제회 업계에서도 분위기가 달라졌다. 한 공제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코스닥 투자를 하지 않던 기관들의 수급이 들어올 여지가 생겼다"고 했다.

연기금 자금이 코스닥으로 향할 때 ETF가 핵심 통로가 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시가총액 1조원 미만 종목이 수두룩한 코스닥 시장에서 수십조원 단위의 기관이 개별 종목을 직접 사들이면 가격 왜곡이 불가피하다. 코스닥150을 추종하는 ETF를 통해 시장에 진입할 경우 가격 충격 없이 벤치마크를 추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코스닥 관련 ETF 수익률도 이미 가파르다. 코스콤 ETF 체크에 따르면 최근 3개월(2025년 11월~2026년 1월) 기준 KODEX 코스닥150의 수익률은 21.84%, TIGER 코스닥150은 21.29%를 기록했다. 이를 예상한 운용사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코스닥 관련 ETF 24개가 모두 패시브인 현재 시장에서 타임폴리오자산운용·삼성액티브자산운용·한화자산운용 세 곳이 3월 상장을 목표로 코스닥 내지 코스닥150 기반 액티브 ETF를 준비 중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한국투자신탁운용·키움투자자산운용도 신상품 출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밸류에이션 부담은 경계 요인으로 꼽힌다. 코스닥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28.7배로 5년 평균(18.4배)보다 56% 높다. 김중원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코스닥은 이익 개선보다는 지수 상승 과정에서 PER이 함께 올라가는 흐름이 관찰된다"며 펀더멘털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음을 짚었다. 반면 이성훈 키움증권 연구원은 "부실기업이 퇴출당하고 우량기업의 실적 성장이 부각된다면 지수 전반의 리레이팅도 가능하다"고 봤다.

기금운용평가 지침 개정안은 2027년도에 실시하는 2026회계연도 기금 자산운용 평가부터 적용된다. 각 연기금의 포트폴리오 조정은 올해 안에 구체화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