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에서 '새로운 전쟁의 시대, K방산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시대포럼'이 열렸다. 이날 행사는 약 150명의 참석자 대부분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성료됐다.
이정동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조연설에서 "기존 방식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새로운 전장 환경이 나타났을 때 국방부가 민간을 상대로 '도전적 질문'(그랜드 퀘스트)을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방부의 가장 중요한 일은 기술을 직접 다 만드는 게 아니라 '이런 기술이 필요하다'는 문제를 정확하게 출제하는 것"이라며 "초기 버전의 요구 수준을 정해주고 국방 현장을 테스트베드로 내주고 피드백을 통해 스케일업하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 국방부가 정말 핵심적인 문제를 주도적으로 던지고 있느냐를 보면 (그렇지 않다.) 여전히 수요조사 방식이 많다"며 "연구자들에게 '무슨 기술이 필요하냐'고 물으면 결국 국방에 필요한 기술이 아니라 연구자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국방 분야 RFP(과제제안요구서) 수준을 낮춰야 한다. 낮춘다는 것은 허접한 걸 하자는 뜻이 아니라 도전적 문제를 풀 수 있도록 현실적인 초기 버전을 먼저 허용하자는 뜻"이라며 "버전1을 뽑고 버전2로 빨리 올라갈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갖추는 것이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클라크 소장은 기조연설에서 "한국은 대규모의 민간 전자산업과 상용 제조업을 갖추고 있는 만큼 이러한 역량을 국방 분야에 활용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며 "우리가 최근 목격하고 있는 현상은 기술의 확산으로 인해 일상이나 산업 현장의 정보기술(IT)이 군사적으로도 유의미해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장을 보면 취미용 드론, 스타링크, 상용 위성 정찰 시스템이 모두 현재 러시아군을 공격하기 위한 킬체인(Kill Chain)을 구축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며 "이란 역시 상용 부품들로 샤헤드(Shahed) 자폭 드론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클라크 소장은 "한국이 북한과 장기전을 치르게 된다면 비축된 무기가 매우 빠르게 소진될 것"이라며 "그때는 전쟁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차세대 장비를 생산하기 위해 자동차 산업이나 조선업 같은 민간 산업으로 눈을 돌려야 할 것"이라고 했다.
클라크 소장은 미래전에서 가장 중요한 국방 개념으론 '적응력'(Adaptaion)을 꼽았다. 그는 "최근 이란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이란은 미국이 사용해 온 것과 동일한 통신망과 위성 정찰 그리고 정밀 타격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며 "이제 관건은 상대보다 한 발 앞서 나가기 위해 얼마나 신속하게 새로운 기술의 조합과 새로운 전술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기술 수준이 높은 국내 방산 스타트업이 한국을 테스트베드로 인식하지 않는다"며 "국내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 방위산업 구조에 대해선 "주요 조달 체계의 키 플레이어들이 소위 티라노사우루스와 같은 거대 기업"이라면서 "지금의 전쟁은 거대 공룡 간 경쟁이 아니라 진취적이고 날쌘 '벨로시랩터'와 협업해 싸워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과거에는 스타트업이 '죽음의 계곡'을 넘어야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였지만 2006년 미국 와이콤비네이터 설립을 계기로 초기 단계부터 투자자가 함께하는 모델이 도입됐다"며 "국방 분야에도 이 같은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정부가) 드론·로봇 몇 대를 언제까지 만들겠다고 하는데, 한국은 대량 제조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며 "실질적으로 드론과 로봇 대량 생산을 위한 시설이 전무하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MUAV(중고도 정찰용 무인기) 기반의 유·무인 전투기를 활용한 TST(시한성 표적) 동시타격 체계를 제안했다. TST는 제한된 시간 내에 타격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치는 표적을 의미한다. 은폐 및 지하화된 북한의 주요 군사시설은 발견 즉시 신속한 타격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TST에 해당한다.
조 교수는 "TST가 이란보다 많은 곳이 북한"이라며 "대부분 지하에 있고 전파나 열화상으로도 탐지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현무-5, 차세대 이지스함, KF-21 등은 피해를 감수하고 계속 투입할 수 없다"며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인명 피해를 감수하는 전쟁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명 피해 발생을 최소화하는 새로운 유·무인 복합체계 전술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하 상무는 한국 방산의 초격차를 위해 국방 AI 데이터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국가 AI전략위원회와 국방부, 방위사업청이 추진하는 공공 데이터 활용 협력은 물론 민간의 고실감 멀티모달 합성데이터 산업을 통해 학습 데이터를 보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각종 무인 무기 체계를 개발하는 안두릴, 전장 데이터 플랫폼을 개발한 팔란티어 모두 민간 스타트업에서 시작해 전장을 바꿔 나가고 있다"며 "국내 하드웨어 경쟁력에 벤처 생태계 소프트웨어 혁신을 융합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명확한 의지를 갖고 주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커스틴 바톡 뉴 비스타 캐피탈 공동창업자는 이날 화상 발표를 통해 "각국의 국방부와 스타트업이 협력하는 건 세계적인 현상"이라며 "방산 스타트업의 기술이 성장하고 나아가 정부 차원에서 이들의 기술을 적극 수용하면서 벤처 기업을 비롯한 시장의 인식도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유 의원은 "우크라이나가 단기간 내에 세계 최고 수준의 드론 기술을 갖추게 된 가장 주요한 원인은 절박함"이라며 "대한민국 군에서 가장 부족한 것 중 하나가 절박함"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 의원은 "결과만 놓고 성패를 가르는 방식으로는 진정한 혁신이 나오기 어렵다"며 "방향성과 과정을 중심으로 평가해 실패하더라도 충분히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주도의 탑다운 방식에서 벗어나 기업과 연구자가 직접 과제를 제안하는 바텀업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도 했다.
홍 회장은 "국방부와 국정원에 아직 창투사가 없는 것은 세계 최고의 자기방어 역량을 갖추려는 대한민국의 변화가 기존의 노력을 강화하고는 있지만 그 틀을 깨고 차원을 달리하고 있지는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어 "기존의 시각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국방부와 국정원이 창투사를 설립하면 그곳에 첨단산업의 투자 인재들이 모일 수 있고 민간에서도 그 의미를 크게 받아들여 이 분야에 뛰어난 인재들이 뛰어들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시대는 힘의 논리로 재편되는 국제 질서와 드론·AI 등 신기술이 불러온 새로운 전쟁 양상에 주목해 올해 첫 시대포럼을 기획했다. 앞서 시대는 군사 데이터와 AI 등을 활용하는 미국의 방산기업 팔란티어와 안두릴 등을 해부하고, 한국의 국방 조달시스템 등 현실을 진단해 K방산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심층 기획 기사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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