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정부는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 왔다. 미국이 일찌감치 이란을 배후로 지목한 것과 달리 정부는 피격 여부조차 단정하기 어렵다며 판단을 유보했다. 합동 조사 이후에도 '미상의 비행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공격 주체 특정에는 선을 그었다. 주한 이란 대사를 초치하면서도 이란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관계 확인을 우선하겠다는 기조지만, 국제사회가 가해자를 특정하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대응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6일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해 조사단을 급파했다. 당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피격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추가 정보를 검토한 결과 확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초기 판단의 한계였는지 외교적 파장을 고려한 수위 조절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확실한 것은 국면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피격이 확인된 이상 '선조사 후대응'이라는 원칙만으로 상황을 관리하기는 어려워졌다.
당장 시급한 것은 우리 선박의 안전이다. 현재도 이 해역에는 우리 선박 수십 척이 운항하거나 대기 중이다. 정부는 모든 외교적 역량을 동원해 이들이 안전하게 항로를 벗어날 수 있도록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안전 보장을 확보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란 정부로부터 재발 방지에 대한 확실한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우리 상선이 위험에 노출되는 악순환을 끊지 못한다면, 사건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이번 사태는 그간 유지해 온 '거리두기 외교'의 한계를 드러낸다. 한국은 미국 주도의 해양안보 구상 참여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지만,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이는 분쟁에 가담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피해를 입은 국가가 자국민과 자국 선박의 안전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는 기본 책무의 문제다. 그렇다면 호르무즈 다국적군 구상, 아덴만 청해부대의 작전구역 확장, 비전투 인력 파견 등 다양한 선택지도 더 이상 추상적 논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국익과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외교적 모호함은 방패가 되기 어렵다.
정치권 역시 이번 사태를 정쟁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 국가 물류망이 공격받은 엄중한 안보 위기 앞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정부는 단호하고 냉정한 대응을 모색하고, 국회는 정부의 외교적 협상력에 힘을 실어주는 초당적 협력을 보여줘야 한다. 나무호 피격은 한국 외교·안보 기조가 시험대에 오른 중대한 전환점이다. 정부는 외교적 중립이란 틀에 갇히기보다 국민의 안전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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