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에 신용카드 대출 광고가 붙어 있다./사진=뉴시스
2003년 카드대란은 오래전 일처럼 여겨졌다. 몇 년 전 드라마 소재로 등장했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상록수 논란은 그 과거가 누군가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현실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상록수는 카드대란 당시 급증한 장기 연체채권을 정리하기 위해 2003년 주요 은행과 카드사들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유동화전문회사다. 금융사들이 직접 들고 있기 부담스러운 부실채권을 별도 법인으로 넘기고 이 법인이 채권을 보유·관리해온 구조다.

금융사 입장에서는 부실채권을 분리한 것이지만 채무자 입장에서 빚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채권자의 이름이 바뀌었을 뿐 채무는 20년 넘게 남아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약탈적 금융' 발언은 논란의 방아쇠가 됐다. 금융권은 곧바로 상록수 보유 채권 매각 쪽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이 장면은 씁쓸하다. 금융권은 포용금융을 말해왔고 당국은 새도약기금을 만들었다. 그런데 20년 넘은 카드대란 채권은 대통령의 질타가 있기 전까지 제도의 사각지대에 남아 있었다.

정부는 취약차주의 재기를 지원하기 위해 원금 5000만원 이하, 7년 이상 장기연체채권을 매입해 추심을 중단하고 채무조정이나 채권 소각 등을 지원하는 새도약기금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상록수 보유 채권은 민간 SPC(특수목적법인) 자산이라는 이유로 우선 정리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제도는 생겼지만 카드대란의 잔재는 제도 바깥에 남아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고 상록수 논란을 곧바로 '약탈적 금융'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상록수는 개별 금융회사가 지금 직접 채무자를 상대로 추심하는 구조라기보다 별도 SPC가 채권을 보유·관리하는 형태로 운영돼 왔다. 금융사들도 현재 자신들은 지분을 가진 주주 성격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상록수를 만든 것은 금융권이고 지분을 보유한 것도 금융권이다. 채권 회수에 따른 경제적 이익 역시 금융권과 완전히 무관했다고 보기 어렵다. 직접 추심하지 않았다는 설명은 책임의 구조를 말해줄 뿐 책임이 사라졌다는 증거는 될 수 없다.

금융당국도 비켜서기 어렵다. 취약차주 재기를 지원하겠다는 제도가 만들어졌는데 정작 20년 넘게 묵은 카드대란 채권이 남아 있었다면 제도의 빈틈으로 해석될 수 있다.

물론 상록수 청산이 빚 탕감의 신호로 읽혀서는 안 된다. "빚 갚는 사람만 바보 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은 가볍지 않다. 금융은 약속 위에 선다. 빌린 돈은 갚아야 하고, 성실하게 상환해온 사람들의 박탈감도 고려해야 한다. 이 원칙이 흔들리는 순간 포용금융은 곧바로 특혜 논란에 갇힌다.

그렇다고 이 원칙만으로 상록수 문제를 덮을 수도 없다. 상록수 채권은 최근 발생한 부실이 아니라 카드대란 이후 이어진 장기연체채권이다. 원금 1000만~2000만원 수준이던 채무가 연체이자와 시효 연장 등을 거치며 수억원대로 불어난 사례까지 알려졌다. 쟁점은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지 않다. 회수 가능성이 희박한 채권을 언제까지 '받을 수 있는 돈'으로 남겨둘 것인지에 있다.

필요한 건 탕감의 확대가 아니라 책임의 정리다. 일괄 탕감도, 무조건적인 회수도 답이 될 수 없다. 상환 여력과 회생 가능성을 따져 책임을 물을 채무와 재기를 도울 채무를 가르는 선별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특히 회수 가능성이 희박한 오래된 채권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받아낼 수 있느냐보다 채무자가 다시 경제활동에 복귀할 수 있느냐를 우선 따져야 한다. 금융권과 당국이 해야 할 일은 오래된 빚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상록수 청산은 채권 처분에 그쳐서는 안 된다. 오랜 기간 미뤄온 책임의 청산이어야 한다. 카드대란은 금융사 장부에서 끝났을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끝나지 않았다. 이번 청산이 단순한 채권 매각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