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재정 투입이나 제도적 지원보다 민간 금융사의 재무적 부담을 지렛대 삼아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발표된 호르무즈 해협 사태 관련 중소 선사 지원책도 그랬다. 금융위원회는 국내 10개 손해보험사가 자체적으로 10척의 중소 선박에 대해 '전쟁보험'을 공동으로 인수해 최저요율을 적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정학적 분쟁 리스크는 글로벌 대형 재보험사들조차 인수를 기피하는 영역이다. 충분한 글로벌 커버리지 없이 국내 민간 보험사들이 이를 자체적으로 떠안는 것은, 개별 기업의 리스크 허용 한도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달부터 도입된 자동차보험 차량 5부제 할인 특약도 가격 결정 메커니즘의 왜곡을 보여준다. 고유가 부담 완화라는 명분 아래 약 1700만대 차량에 연 2% 수준의 보험료를 환급해 주겠다는 것이다. 손보사들은 지난해 자동차보험 부문에서만 708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손익분기점을 밑도는 구조적 적자 사업부문에 추가적인 부담이 가해진 만큼 자동차보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회의적 시선도 커진다.
카드사들 역시 2007년 이후 14차례의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거치며 본업인 신용판매 부문의 수익성이 한계 상황에 직면했음에도 연내 또 한 번의 수수료 추가 인하 압박을 받고 있다. 주유비 할인카드 수수료의 추가할인 요구 등은 수년간 감익 흐름을 이어왔던 카드업계를 시름에 잠기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새로운 혁신 모델로 자리 잡은 인터넷전문은행과 빅테크도 예외는 아니다. 고금리로 연체율이 급등하는 거시경제 환경 속에서도 인터넷전문은행들은 인가 조건이라는 이유로 '중저신용자 대출 의무 비율'을 무조건적으로 맞춰야 한다. 막대한 인프라 비용이 수반되는 빅테크 결제망 역시 원가 구조에 대한 고려 없이 획일적인 수수료 공시 및 인하 압박에 직면했다.
모든 정책에는 비용이 수반된다. 경제·금융 정책은 더 그렇다. 위기 상황에서 금융업권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것은 시대적 요구이겠지만 그 실행 방식이 기업의 건전성을 지속적으로 위협하는 수준이어서는 안된다. 본업의 수익 구조가 악화된 상태에서 포용 명분의 자금 출연이나 금리·수수료 인하 요구가 누적되면 금융사들은 건전성 관리를 위해 결국 중·저신용자 대상의 신용 공급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 포용금융 정책이 되레 취약계층의 제도권 자금 접근성을 제약하는 '풍선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회사의 자본 건전성이 약화된다는 것은 위기 발생 시 거시경제의 충격을 흡수할 완충장치(Buffer)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지속 가능한 포용금융은 시장의 자율성과 가격 결정 기능을 존중하는 토대 위에 정교한 재정 정책과 규제 유인 체계가 결합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포용 금융의 구조적 비용과 편익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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