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대통령 정책실장이 2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 = 뉴스1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호남·충청 등 비수도권에 수백조 원 규모의 첨단 반도체 클러스터를 새로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진행중인 경기도 용인의 반도체 클러스터와는 별개의 투자다. 다음 달 1일 출범하는 전남광주특별시와 새만금, 충남 일대 등이 대상지로 거론된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지역균형 발전 전략에 기업들이 호응하는 모양새다. 일각에서 '정치 논리' 지적도 나오는 만큼 세제혜택과 전력·용수 공급, 규제완화 등에서 국내외 다른 어떤 지역과도 차별화되는 수준 높은 지원책을 제공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용범 대통령 정책실장은 24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비수도권 반도체 단지 조성 문제와 관련해 "논의 마무리 단계가 다가오고 있다"며 "확정되면 국민에게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수도권에 더 지으려 해도 땅도, 전력도, 용수도 없다. 그렇다고 해외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비수도권 제2 반도체 클러스터 참여를 사실상 확인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당초 두 기업은 반도체 칩 후공정인 패키징 공장을 지방에 세우는 걸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이 대통령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면담 후 제2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쪽으로 방향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다음 주 '광주·전남 반도체 클러스터' 구상을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곧 이 대통령을 면담하고 투자 계획을 논의할 전망이다. 최첨단 메모리 반도체 생산라인 하나를 구축하는데 최소 60조 원이 든다고 한다. 비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에 5∼10년에 걸쳐 수 백 조 원 규모의 투자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의 폭증하는 수요에 대응해 메모리 반도체 설비확장이 급한 건 사실이다. 수도권에 편중된 제조업 투자를 다른 지역으로 분산하면 해당 지역의 경제 활성화와 지역균형 발전 제고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정책 목표와 투자가 순조롭게 진행돼 새 시설이 초격차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지는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호남·충청 지역의 전력 사정이 수도권보다는 낫지만, 생산전력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태양광·풍력 체계만으로 1년 365일 반도체 시설을 안정적으로 돌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발전 설비 확충과 용수 확보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대규모 투자가 기대한 성과를 내기 어렵다. 지방근무를 기피하는 인재 확보도 만만치 않은 문제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반도체 투자유치 공약이 쏟아졌을 때 기업의 판단에 맡겨야 할 투자 결정에 정치가 개입하는 데 대한 경제계의 우려가 적지 않았다. 기업의 입지 검토 과정이 충분히 자율적으로 이뤄졌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결정이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한 후회 없는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 지역주민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 환경을 만드는데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