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강연장에서 주제와 무관한 질문을 하나 받았다. 인지과학자에게 꼭 물어보고 싶었다며, 한 분이 손을 들었다. "고위험-고수익과 안정-확정된 수익 중에 고르라고 하면, 세계에서 한국인만 위험을 피하지 않고 고위험을 택한다던데 왜 그런가요?"
행동경제학으로 노벨상을 받은 카너먼의 전망이론을 염두에 둔 질문이었다. 학교에서 여러 번 다뤄 온 내용이라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한국인만 위험회피 성향이 극단적으로 낮다는 실험이나 데이터를, 나는 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망이론을 일반적으로 설명드린 뒤, 한국인만 다르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질문하신 분의 표정은 끝내 석연치 않았고, 솔직히 내 마음에도 찜찜한 것이 남았다.
그 찜찜함은 며칠 뒤 다시 돌아왔다. 넷플릭스로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바로 그 실험이 등장했다. 80% 확률로 4천만 원을 받거나 20% 확률로 한 푼도 못 받는 A안과, 100% 확률로 3천만 원을 받는 B안. 참가한 한국인 스무 명 중 열일곱 명이 안전한 B안을 골랐다. 카너먼의 원래 실험에서 B안을 택한 비율은 80%였다. 방송용 소규모 실험이었지만 결과는 거의 같았다. 한국인만의 반전 같은 건 없었다. 학술 데이터를 봐도 마찬가지다. 2010년 아크스 등의 연구에서 미국·중국·한국의 위험회피 성향에는 의미 있는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니 세계에서 한국인만 위험을 즐긴다는 말은 사실로 보기 어렵다.
반론도 가능하기는 하다. 한국인이 미국 증시에서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레버리지 ETF를 사들이는 비율은 유독 높다. 위험을 덜 피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엔 다른 맥락이 있다. 카너먼 실험의 확률은 처음부터 못 박혀 있다. 80%는 80%다. 반면 주식시장의 불확실성은 정해진 숫자가 아니다. 투자자는 자기가 모은 정보와 판단으로 그 불확실성을 저마다 다르게 해석한다. 누군가에게 레버리지 ETF는 도박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계산을 끝낸 투자이다. 확정된 확률 앞에서의 선택과, 불확실성을 스스로 읽어내는 선택은 다른 종류의 일이다. 그러니 ETF 통계 하나로 한국인이 유별나다고 결론짓는 것 역시 성급하다.
여기서 진짜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왜 한국인만 유별나다는 이야기에 그토록 솔깃할까? 생각해 보면 그런 이야기는 늘 인기가 많다. 한국인은 정이 많아서, 한국인은 빨리빨리라서, 한국인은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어떤 것은 흉처럼, 어떤 것은 자랑처럼 들리지만 구조는 똑같다. 우리를 하나의 덩어리로 묶어 세상에서 떼어 놓는다. 한국인만 그렇다는 단정은 검증을 요구받기보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데이터는 미국도 중국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데, 우리는 우리만 다르기를 바란다. 사실로 반박해도 그 믿음이 잘 꺼지지 않는 건, 그것이 세상에 대한 진술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진술이기 때문이다.
왜 하필 우리 자신에 대해 그렇게 말하고 싶을까? 나는 우리가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한 세대 만에 가난을 벗고, 지금도 숨 막히는 경쟁 속에 서 있는 한국인. 우리에게는 그 과격했던 속도와 피 말리는 현재를 설명할 서사가 필요하다. 우리는 늘 남들과 달랐다는 이야기는 거기에 잘 맞는다. 달라서 이만큼 빨리 왔으니, 그 다름이 앞으로도 우리를 더 멀리 데려갈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경쟁도 견딜 만한 것이다. 한국인만 위험을 즐긴다는 거짓은, 안전을 택하는 본성을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알리바이, 달콤한 환상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다름이 참이라 해도, 그 결과에는 늘 양면이 있었을 것이다. 같은 다름이 우리를 빠르게 키운 만큼 어딘가를 빠르게 갈아 넣었을 텐데, 자기 위안의 서사는 밝은 쪽만 골라 담는다.
강연장에서 끝내 석연찮아 하던 그분의 표정이 다시 떠오른다. 이제 와 생각하면 내 답이 틀려서 지었던 표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듣고 싶던 답이 아니어서였을 것이다. 다음에 어딘가에서, 누군가로부터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뭐라고 답해야할지 고민해본다. 질문하는 이의 얼굴, 표정이 떠오르기에 고민이 쉬이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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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 경희대 교수는 인지과학을 바탕으로 인간의 사고와 경험, 그리고 기술변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왔다. 최근엔 AI 확산과 인간의 확장된 미래를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저술활동 외에도 강연과 유튜브 등을 통해 기술 변화를 쉽게 풀어내며 대중적으로 폭넓은 공감과 인기를 얻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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