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태 전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이 '5·18 성역화' 발언으로 사실상 경질되면서 이재명 대통령의 '포용적 정치 실험'이 4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보수 인사를 국정에 끌어들이는 탕평의 시도가 결실을 보지 못한 셈이다. 향후 탕평 인사가 진영 대립 속에서 소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7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전 부위원장은 전날 청와대의 사퇴 권고 2시간 만에 총리급인 대통령 직속 규제위원회 부위원장 직을 내려놨다. 이 전 부위원장은 서면 입장문을 통해 "자신과 일부 집단의 성역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회가 돼선 안 된다"며 "자유와 방종의 경계마저 권력과 집단이 자의적으로 정의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바로 전체주의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파문의 발단은 서울 배재고 야구부 관련 논란이었다. 배재고 일부 선수들은 광주제일고와 경기 도중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응원 구호를 외쳐 6개월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 전 부위원장은 이에 대해 "5·18이 성역이 됐다"며 "이 모습은 대한민국보다 김일성 사진이 나온 신문이 비에 젖는 것을 보고 울부짖는 북한의 모습"이라고 했다. 역사의 성역화 탓에 학생들의 장난도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가 됐다는 취지였다.
KAIST(한국과학기술원) 교수 출신의 보수 성향 경제학자인 이 전 부위원장은 지난해 대선 당시 홍준표 국민의힘 경선 후보의 경제 책사였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보수 인사를 끌어안아 진영을 넘어 능력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취지로 이 전 부위원장을 발탁했다.
청와대가 사퇴를 권고하고 이 전 부위원장이 이를 받아들이는 형태로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이재명 정부의 '탕평 인사'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탕평 인사를 둘러싼 논란은 크게 볼 때 이번이 4번째다.
이석연 국민통합위원장은 지난 5월 청와대 국민통합비서관실의 한 행정관으로부터 "국정 운영 및 대통령 보고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중대한 사안임을 엄중히 고지한다"는 이메일을 받은 사실을 공개했다. 이 위원장은 당시 "40년이 넘는 공직 생활 동안 이와 같은 무례한 사례를 경험한 적이 없다"며 "청와대가 자만에 빠졌다"고 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날 '동행미디어 시대'와의 통화에서 "이번 사안은 포용과 통합이란 본래 취지와 현실 정치의 갈등 구조가 충돌한 사례"라면서 "공직자는 역사적·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신중해야 하지만, 동시에 탕평 인사가 진영 갈등의 대립 속에서 곧바로 소진되지 않도록 일정한 운신의 폭을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포용 정치는 인사 발탁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사를 발탁할 것인가의 검증도 전제돼야 한다"며 "그 인사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과 책임의 기준을 함께 설계할 때 지속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국무총리는 시대와의 통화에서 "국민통합을 목적으로 탕평 인사를 한다면 극우, 극좌라는 평가를 받는 이들을 기용하는 것은 곤란한다"며 "이번 인사에 영향을 받지 말고 우파를 이해하는 좌파, 좌파를 이해하는 우파 등 상식에 입각한 인사들을 기용하는 노력을 계속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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