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 노총은 노조 회계공시 제도 도입 초기부터 '노조 자율성을 침해하는 조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상급 노조 때문에 조합비 세액공제를 못 받는다'는 산하 노조원들의 여론에 밀려 결국 공개를 수용한 바 있다. 2023년 11월 당시 한국노총 조합원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위헌적 노조법·소득세법 시행령 헌법소원심판 청구' 기자회견을 여는 모습. / 사진=뉴스1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상급단체와 산하 노동조합이 모두 회계 내용을 공개하는 경우에만 조합비를 세액공제해 주던 규정이 폐지될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양대 노총은 회계를 공시하지 않아도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된다. 한국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양대 노총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3년 만에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커졌다.
고용노동부는 상급단체가 회계를 공시하지 않아도 산하 노조만 공시에 참여하면 노조원들이 조합비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이르면 다음 달 입법예고할 방침이라고 한다. 노조 회계공시 제도는 합리적인 노사관계 정착을 목표로 2023년 도입된 윤석열 정부의 대표적인 노동개혁 정책이다. 조합원 1000명 이상인 노조가 회계를 공시하면 연말정산 때 조합비의 15%를 세액공제해 주되, 해당 노조의 상급단체가 회계 공시를 거부하면 산하 노조 조합원도 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지난 정부가 소득세법을 개정해 산하 노조와 상급단체의 회계 공시를 연동시킨 것은 민주노총 산하 노조에서 조합비 횡령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는 등 수백억 원 규모의 조합비를 다루는 거대 노총의 투명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양대 노총은 "노조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산하 노조 조합원들 사이에서 "상급단체 때문에 연말정산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커지자 마지못해 회계 공시에 참여했다. 이번에 상급단체와 산하 노조의 회계 공시 연동 규정을 없앨 경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굳이 회계 내용을 공개할 이유가 없어진다.


문제는 이러한 조치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사회 전반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조합원 1000명 이상 노조의 회계 공시 참여율은 89.1%로 대단히 높다. 월급에서 떼어 낸 조합비가 정당한 곳에 제대로 쓰이는지 확인하고 싶어하는 노조원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산하 노조 조합원들이 낸 조합비의 일부가 상급단체로 전달되고, 두 노총에 지난해에만 100억 원이 넘는 국고 지원까지 이뤄진 만큼 양대 노총의 돈 씀씀이 역시 투명하게 공개되는 것이 마땅하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기업에는 '투명 경영'을 요구하면서 노동계의 회계공시 제도 폐지 주장을 사회적 여론 수렴 없이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이재명 정부가 노동계에만 관대한 '이중 잣대'를 적용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회계 투명성은 기업만이 아니라 노동단체에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할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