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경제통 인사를 만난 건 2025년 가을이었다. 증시가 꿈틀대기 시작한 무렵이다. 그는 윤곽 잡힌 정부의 경제 정책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귀에 꽂힌 건 바로 '머니 무브'였다. "부동산에 쏠린 돈을 증시로 끌어오겠다"고 했다. 역대 정권마다 뒷덜미를 잡은 게 부동산이다. '그걸 증시로 해결한다고?' 발상은 신선했다. 그 무렵 이억원 금융위원장을 접할 자리도 있었다. 그는 "첨단기업과 국민성장펀드로 돈을 흘려보내겠다"고 했다. 그걸 "생산적 금융"이라고 불렀다. 비생산적 부동산에서 증시로 자금 물꼬를 확 틀겠다는 구상이었다. 의지가 결연했다.
그들의 얘기는 비장한 출사표처럼 들렸다. '정권이 작심했구나' 생각했다. 증시 띄우기에 전력투구하는 건 예상된 수순이었다. 마냥 쉽지만은 않은 싸움이라고 봤다. 지속적인 '주가 상승'이 전제돼야 돈이 옮겨온다. 하지만 이건 의지의 영역을 벗어난다. 아무튼 주가를 부양하는 정책들이 하나둘 선을 보였다. 마침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시작됐고, 코스피가 달아올랐다. 한마디로 '타이밍은 좋았다'.
그리고 정부는 5월 말, 출범 1년을 맞아 '38대 국정성과'를 발표했다. '유능'이라는 제목 아래, 성과 1번은 '코스피 8000' 돌파였다. 헷갈렸다. '정부 부양책만으로 주가가 올랐었나?' 어쨌든 코스피는 6월 22일 9000포인트를 뚫을 때까지 파죽지세로 더 달렸다. 수천만 원, 수억 원씩 '평가 이익'을 냈다는 인증 화면이 퍼져나갔다. 회사원은 물론 노인, 주부, 학생들까지 증시로 몰렸다.
반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불과 한 달. 코스피는 정점에서 30% 가까이 급락했다. 그냥 하락 폭이 문제가 아니다. 하루건너 급등락을 반복하는 '홀짝 증시'로 변질됐다. "정부가 투기판을 조장했다"는 불만이 쏟아진다. 물론 주식 투자는 개인 판단과 책임을 전제로 한다. 그건 일단 논외로 하자. 여기선 정부가 시장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춰 보자.
증시는 역사적으로 급등장에서 그 끝이 화려하지 않았다. 정책 책임자라면 과거 교훈을 머리에 입력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2007년 11월로 가보자. 서울 압구정동의 미래에셋증권 지점은 회사원, 주부, 노인들로 가득했다. 펀드에 가입하려는 대열이었다. 500~1000포인트 박스권에 갇혔던 코스피가 2000선까지 오르면서 빚어진 광풍이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터졌다. 금융위기가 찾아왔고 2008년 주가는 반토막 났다. 정부가 앞단에서 시장을 주시하고, 경고도 하고, 리스크를 관리해야 했다.
다시 돌아와 보자. 지난 1년간 정부는 어떤 메시지를 냈고, 무슨 상품을 도입했는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빚투(빚내서 투자)도 레버리지 투자"라고 말해 뭇매를 맞았다. 끝판왕은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다. 6월 말 김어준 방송에 출연해 "세계 5~6위권인 한국 증시가 몇 년 뒤 3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코스피가 4배 오르는 건 기본이라고도 덧붙였다. 한술 더 떠 "내기를 하자"고 했다. '머니 무브'라는 지향점은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주가 자체가 목표나 성과처럼 변질될 때 결말은 뻔하다.
전례 없던 코스피 질주에 자신감이 생겼던 걸까. 정부는 '삼성전자∙하이닉스 레버리지 ETF' 또한 과감하게, 그리고 서둘러 도입했다. 하지만 증시를 부동산 뺨치는 투기판처럼 만들어 버렸다. 오판이자 오만이다. '그린스펀 풋(Put)'이라는 유명한 경구라도 한 번쯤 새겼어야 했다. 이 말은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던 앨런 그린스펀이 주가 하락 때마다 금리를 내려 투자자들을 안심시킨데서 유래했다. 풋은 가격 하락시 손실을 막아주는 '풋 옵션'을 뜻한다. 하지만 그가 지속적으로 돈줄을 풀면서 금융위기를 촉발했고, 결국 개인은 큰 손실을 안았다. 정부가 '믿어도 된다'는 생각을 심어줄수록 개인 투자자들도 위험에 무뎌지면서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지난 1년은 그 교훈을 보여준 값비싼 시간이었다.
정부는 '모두'란 말을 즐겨 쓴다. '모두의 성장, 모두의 창업'이 그렇다. 국민에게 고루 혜택이 돌아가는 실용주의 기조를 반영한 구호다. 하지만 증시에서도 그걸 원했다면 실수다. 모든 국민이 동시에 이기는 증시는 존재하기 어렵다. 그게 가능하면 대체 누가 돈을 잃겠는가. 정부는 '잃는 증시, 떨어지는 증시, 위험한 증시'는 잘 얘기하지 않았다. 이제 와선 엉뚱한 소리를 한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개인들이 역동적으로 투자하는 특성 때문에 코스피 변동성이 커진다"고 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면 더욱더 위험을 말했어야 했다. 항상 주식 매수를 외치는 애널리스트와 달리 정부는 위험도 함께 바라보고 얘기해야 한다. 그게 정부와 증권사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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