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들이 가위를 빼들었다. 자르려는 것은 다름 아닌 담배. 스스로에게만 하는 금연 다짐이 아니다.

회장님들은 자신의 금연뿐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금연을 압박하고 있다. 처음에는 권유 수준이지만 차차 인사와 연결시키기도 한다. 담배를 피우는 이는 임원이 될 수 없다는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


채찍 말고 당근도 있다. 금연을 도우려고, 건강을 챙기라고 운동기구 같은 것을 내주기도 한다. 금연 보조금도 준다.

길게는 십몇년, 짧게는 몇달이 지난 구자준 LIG손해보험 회장,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정준양 포스코 회장,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의 담배 퇴치 작전을 들여다봤다.

구자준LIG손보  회장
"직원.가족 모두 만족시키는 금연"

마라톤 마니아인 구자준 회장은 올해 1월 시무식에서 전사적 금연 캠페인을 제안했다. 또 전체 임원 중 흡연자 10여명은 따로 본사에 모이게 해 금연 서약식을 열기도 했다.

직원들에 대한 금연 권유가 넉달 정도 지났을 뿐이지만 구 회장 스스로의 금연기는 8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까지 오랜 기간 애연가로 생활하던 그는 단칼에 담배를 끊은 기억이 있다. 당시를 회고하며 "방위산업에 종사하던 젊은 시절에는 하루에 3갑이 넘는 담배를 피울 정도로 담배에 중독돼 있었지만 1985년 5월경 수면 중 갑작스런 가슴 통증으로 심각한 건강상의 위협을 느끼고부터 일순간에 담배를 끊었다"고 금연 계기를 설명하기도 했다.


구 회장이 느낀 가슴 통증의 원인은 급성 심근경색이었다. 모진 금연이 없었다면 생명이 위협받았을 수도 있다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임원들뿐 아니라 전 직원의 동참도 유도하고 있다. 금연 서약을 한 임직원의 가정에는 가족의 지지와 도움을 요청하는 '가정 통신문'이 발송된다. 금연에 어려움을 겪는 임직원을 위해서는 금연 보조제 지급과 금연학교 입교 지원을 통해 도움을 주고 있다. 골초 가장 때문에 속을 끓였던 가족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음은 물론이다.

구 회장은 “임직원은 물론 임직원의 가족 역시 LIG손해보험과 고락을 함께하는 한 가족과 같다”고 강조한다. 직원 가족들에 대한 특별한 배려도 빼놓지 않았다. 초·중·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자녀를 둔 임직원 가정에 입학 축하 메시지와 함께 5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입학선물로 건네기도 했다.

담배 때문에 조금만 오래 걸어도 헐떡이던 직원들 중 일부는 회사가 주최하는 마라톤(LIG코리아오픈마라톤)에 참가하고도 가쁜 숨을 내쉬지 않아 금연 결의를 더욱 다졌다는 후문이다.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
"Why not change?" 왜 끊지 않는가?

메리츠금융그룹의 전 계열사(메리츠화재·메리츠증권·메리츠자산운용 등) 직원은 임원이 될 때 금연서약서를 써야 한다. 이는 조정호 회장의 금연 주문에서 비롯됐다.

조정호 회장은 지난 2006년 11월 셋째 형인 고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이 폐암으로 타계한 후 금연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임원이 금연서약서를 쓴 후 일정 기간이 흘러도 담배를 끊지 못하면 '금연학교'에 보낸다.

금연을 그룹의 변화 전략과 연결 짓기도 한다. 지난 1일 메리츠종금과 메리츠증권이 합병해 메리츠종금증권이 됐을 때 회사는 다양한 광고를 선보였다.

합병을 알리는 신문광고는 '변화'라는 컨셉으로 세상에 변화하지 않는 모든 것들에게 “Why not change?“ 즉, “왜 변화 하지 않는가?“라고 반문을 한다. 메리츠증권과 메리츠종금이 합쳐진 회사(메리츠종금증권)가 앞으로 이끌어나갈 변화에 대한 의지도 된다.

특히 시리즈 중 ‘금연’ 편은 매년 금연을 목표로 세우지만 변화하지 못하고 번번이 실패하는 흡연 남성을 통해 변화의 당위성과 의지를 자랑하기도 했다. 공개석상에 잘 나서지 않는 조 회장이지만 회사 광고 'Why not change?'는 '왜 끊지 않는가?'의 강조처럼 보인다. 모질게 담배 끊을 때처럼 회사의 통합을 이끌겠다는 의지로도 읽힌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친환경 기업 위해 금연은 필수

웅진그룹의 금연정책은 2년여의 유예(준비) 기간을 거치며 점점 강도를 더해갔다. 웅진그룹은 지난해 9월부터 전 계열사 본부장 이상 임원들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모든 임직원의 금연을 의무화했다.

단기간의 충격요법처럼 보이지만 웅진의 금연 의무 정책은 2년여가 넘는 유예기간을 둔 '합리적'인 제도다. 2007년 윤석금 회장이 2년 유예조치와 함께 발동한 '금연령'은 지난해 10월 팀장급 이상, 올해부터는 전 임직원으로 확대됐다.

웅진그룹은 금연의 강제성 외에 당근책도 내놓고 있다. 그룹은 3년 전부터 금연서약서를 쓴 직원에 한해 4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한 데 이어 금연이 권고 수준에서 강제조항으로 바뀐 지난해 9월부터 인사상 우대 등 적당한 보상책도 곁들이고 있다.

윤 회장은 직원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웅진은 친환경기업이다. 금연은 건강에도 좋지만 남에게도 간접흡연의 피해를 주지 않는 가장 기본적인 환경 친화적인 실천방법이다"라는 말을 자주 꺼내곤 한다. 학습기, 정수기 회사 웅진에서 태양광산업, 수처리 기업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한 웅진을 이끈 그만의 자기 암시요, 주문이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
"스트레스는 놀이와 소통으로 풀자"

포스코는 금연 캠페인 6개월 만에 2만여 임직원들의 흡연율 '제로(0)'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정준양 회장 취임 직후인 지난해 3월 말 금연 캠페인을 전개해 9월 말 본사와 출자사, 주요 외주 파트너사까지 전 임직원들의 금연에 성공(?)했다. 외형상의 성과긴 하지만 적어도 회사에서 담배를 피우는 이는 없다는 자체 평가가 나온다.

정 회장은 "금연은 서서히 끊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끊어야 한다"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담배 절단식, 금연 펀드 조성, 금연클리닉 지원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동원됐다. 포스코는 금단 증세로 어려움을 겪는 직원들을 위해 수지침을 놔주고, 금단현상 완화를 위한 안내문을 보내기도 했다. 사내 건강증진센터에서는 금연 패치 및 금연에 도움이 될 만한 기구들을 지급했다.

본래 금연정책은 직원들의 건강을 챙기려는 의미도 있지만 기업문화 변화와도 연관된다. 소통과 부드러움을 내세운 그는 직원들과의 접점을 늘리고 있다.

매일 아침 직원 10여명과 함께 조찬간담회를 열기도 했고 보고는 이메일 위주로 하도록 했다. 자연스레 스마트폰 지급 등도 뒤따랐다.

본사 빌딩 안에 1190㎡(약 360평) 규모의 창의놀이방인 '포레카'도 만들어 놀면서 일을 해야 창의적인 경영을 할 수 있다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도 애썼다. 스트레스를 담배가 아닌 소통과 놀이를 통해 풀자는 그만의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