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자동화기기(ATM)를 이용할 때 가장 아까운 것이 수수료다. 500원에서 1200원 정도의 적은 돈이지만 내돈을 찾기 위해 돈을 지불한다는 것이 어쩐지 마뜩치 않다. 금융소비자 입장에서 100원 안팎의 수수료가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 들어 시중은행들이 ATM수수료를 인하하거나 제한적 면제에 나서고 있다. 금융소비자들은 은행들이 이처럼 일부 고객에 대해서 수수료 인하를 실시하면서 과연 ATM 수수료가 꼭 필요한 것인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 뒤늦은 수수료 인하
가장 먼저 제한적 수수료 면제에 나선 곳은 우리은행이다. 우리은행은 8월15일 광복절을 기념해 사회적 배려대상자를 대상으로 창구송금 수수료, 당행 자동화기기 이용 이체수수료 등 내국환 수수료에 대해 수수료 우대 서비스를 대폭 확대 시행했다. 이를 시작으로 신한은행, 국민은행 등 시중은행들도 노인, 장애인 등에게 수수료 인하를 시작했다.
ATM 수수료 문제는 하루이틀 제기된 것이 아니다. 금감원은 지난 2005년부터 특히 사회적 배려대상자에 대한 수수료 인하 또는 면제를 권고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6년이 지나서야 노인, 장애인에게 수수료 제한적 면제를 실시하게 됐다.
올해 국감에서도 ATM수수료 문제는 또 도마 위에 올랐다. 기초생활 수급자가 최저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행복지킴이통장'에도 한국씨티, 농협, 수협, 기업은행, 전북은행 등이 ATM수수료를 받고 있던 것이다.
은행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ATM수수료 외에도 은행 고유업무와 관련한 부가업무중일반고객에게 약 146종의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 그만큼 은행의 수수료 수입은 막대하다. 금융감독원이 2004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은행의 각종 수수료 수입은 3조6689억원에 달했다. 현재는 더욱 증가했을 터.
그러나 ATM 수수료를 포함한 각종 수수수료가 적정하게 책정된 것인지 분석하기 어렵다는 것은 문제다. 최근 금융당국이 은행의 수수료 수준을 알아보려 했으나 원가분석에 시간이 많이 걸릴 뿐 아니라 분석도 어렵다고 한 것이 보도되기도 했다.
이처럼 분석이 어려운 것은 은행들이 수십종의 각종 수수료를 개별적으로 집계해 관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은행이 공시한 재무제표 상에도 '기타 수수료' 혹은 여타 수수료 등과 합산된 금액만이 제시될 뿐이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은행이 물리고 있는 수수료 수입이 적정한지 가늠할 수 없다.
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은행들이 이익관리 측면에서 담합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며 "ATM수수료의 정확한 수입을 재무제표 상으로도 알 수 없어 구조적으로도 묵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ATM 설치 유지비용도 영업에 필요한 인프라
은행 측은 고객이 단돈 1만원만 인출하거나 잔액확인만 해도 ▲건물 구입비 또는 임대료 ▲사무실 집기 설치비용 ▲관리비, 전기, 보안, 청소 등의 비용 ▲직원 훈련비 및 급여 ▲지점 내 현금 보유 비용 ▲여러 양식 조제비와 안내장 인쇄비 ▲컴퓨터 등 시스템 구입 설치 및 유지관리비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수수료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이것들은 모두 은행 영업을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이기 때문에 별도의 수수료를 요구하는 것은 안 된다고 주장한다.
<금융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비밀>의 저자 송승용 희망재무설계 이사는 "고객을 위한 인프라에 투자했다고 수수료를 고객에게 물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ATM 수수료는 장기적으로 보고 서비스 차원에서 진작에 없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 이사는 "임금, 건물 비용 등이 은행 영업을 위해 필요한 비용인 것처럼 ATM의 관리 보수 비용도 당연히 은행의 인프라 차원에서 처리해야 할 부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재무 전문가는 "은행은 이미 맡긴 예금을 대출에 운용함으로써 이자수익을 얻는 데 수수료까지 받아야 하나"고 꼬집었다.
◇ 은행 얼마나 변하고 있나?
금감원은 2005년부터 ATM 수수료가 과다하게 부과되고 있다며 ATM 전용상품, 일정잔고 유지조건 상품, 일정횟수 이내의 소액송금 수수료면제 등 고객의 선택에 따라 수수료절감이 가능한 상품의 적극 개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ATM 수수료 절감을 위한 금융당국의 의지를 가장 먼저 반영했다. 우리은행은 사회적 배려대상자에게 ATM 수수료를 면제한 데 이어 일반 거래 고객에게도 최대 50%까지 수수료를 인하할 방침을 내세웠다.
그러나 우리은행의 수수료 인하 노력은 박수받을만 하지만 이 역시 소비자의 수수료 절감 효과는 미미할 것라는 지적이 많다. 우리은행은 당일에 한해 2회 이상의 현금인출 거래에 대하여 인출횟수와 관계없이 50% 인하된 수수료 혜택을 제공한다. 그러나 결국 첫회는 기존의 700원(영업시간 후 당행 기준)을 똑같이 내야한다.
<박스> 과거에는 ATM 수수료가 없었다?
현재 40대 이상은 사회생활 초기인 90년대에는 자동화기기 수수료를 낸 기억이 없다. IMF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수수료를 냈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은행 측에서는 ATM에 수수료를 물기 시작한 것은 1991년 금리자유화 이후부터라고 말한다. 즉 과거에도 고객들이 수수료를 지불해왔다는 것이 은행의 설명이다. 그러나 많은 부분을 면제했거나 소액의 수수료만 받았기 때문에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에는 예금금리와 대출금리 간의 차이인 예대마진이 일정부분 보장돼 금융서비스 제공에 따른 수수료가 대부분 보전될 수 있었기 때문에 고객들이 잘 몰랐고 고객들은 은행서비스는 무료라고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