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과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선이 겹친 2012년은 1년 내내 정치적 이슈로 가득 찬 '정치의 해'였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계기로 2011년 하반기에 예열된 후 뜨겁게 달아올랐던 정치의 해는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 당선인으로 지위가 바뀌면서 막을 내렸다. 이 기간 국내 증시에서는 정치테마주 열풍이 그 어느 때보다 거세게 불었다. 정치인과 관계가 있다는 '○○○테마주'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투자자들은 정치인의 말 한마디에도 요동치는 정치테마주에 올라탔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금융당국까지 나서서 정치테마주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몇년만에 찾아온 대박의 기회를 잡겠다고 달려드는 투자자들은 끊이지 않았고 주가 폭락을 경험해도 정치인의 말 한마디면 회복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정치테마주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국내 증시에서 기존 정치테마주들은 선거가 막을 내리면 함께 잠이 들었지만 18대 대선과정에서 생겨난 테마주들은 아직도 꿈틀거리고 있다.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가 18대 대통령 선거일인 지난해 12월19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사진_뉴스1 박정호 기자
◆안철수 테마주 여전히 '팔팔'
지난 18대 대선에서 중간에 발을 뺀 안철수 전 후보의 테마주는 세명의 유력 대선후보 관련 테마주들 중에서 가장 활발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18대 대선 전 거래일 958원으로 거래를 마쳤던 써니전자는 한달여가 흐른 1월17일 4300원까지 오르며 348.85%의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써니전자는 안 전 후보가 지지를 선언했던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패배소식에 지난해 12월20일 장중 873원까지 떨어지는 등 하락세를 연출하는 듯 했다. 하지만 대규모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반등에 성공했고 대선 후 첫거래일에 상한가로 장을 마감했다. 써니전자는 이날을 포함해 8일 연속 가격제한폭까지 치솟았다. 이후로도 상한가 쇼를 펼치면서 1000원 미만이던 주가가 4000원을 넘어섰다.
써니전자의 상승세 앞에 금융당국이 도입한 '단기과열 완화장치'도 별 소용이 없었다. 거래소는 지난 3일 써니전자에 '하루 매매정지 후 3거래일 단일가 매매'를 적용하는 단기과열 완화장치를 발동했다. 써니전자는 단일가 매매 적용 첫날 상한가, 둘째날 하한가, 셋째날 상한가를 기록하며 단기과열 완화장치 발동기간 동안 12.30% 올랐다. 발동기간 동안 주가가 20% 이상 오르면 단기과열 종목 지정기간이 연장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단기과열 종목지정은 자동 해제된다. 써니전자는 지난 10일부터 나흘간 또 한번의 상한가 행진을 했다.
거래량도 폭발적이었다. 대선 이후 써니전자의 일평균 거래량은 678만여주로 총 발행주식(1946만주)의 3분의 1을 넘었다. 총 주식의 절반 이상인 1000만주 이상 거래된 날도 6거래일이나 됐다.
써니전자가 대선이 끝난 후에도 강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안 전 후보가 여권의 대항마로 떠오를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다른 안철수 테마주들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오픈베이스는 대선 이후 120.97% 올랐고 미래산업은 106.83% 상승했다.
투자자들의 시선을 끌만한 마땅한 업종이나 테마가 없는 것도 안철수 테마주가 강세를 나타낸 원인으로 지목된다. 과거에는 차기 정권이 새로운 정책을 내놓으면서 관련 테마주가 형성되는 모습이 나타났지만 이번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철통보안'을 내세워 정책 발표시기를 늦췄고 현재 증시에서는 차기 정권 수혜주로 불릴만한 뚜렷한 업종이나 테마가 없는 상황이다.
◆朴테마주, 인맥-정책 희비
박근혜 테마주는 인맥주와 정책주의 표정이 엇갈린다. 박근혜 당선인과 친인척이거나 관계자가 회사와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테마를 형성했던 종목들은 대체로 내림세를 탄 반면 정책 관련주는 상승흐름이다.
박 당선인의 조카사위가 회장으로 있는 대유에이텍은 대선 이후 4.93% 하락했다. 대유에이텍의 자회사인 대유신소재도 5%가량 떨어졌다.
다른 인맥주들도 마찬가지다. 박 당선인의 동생 박지만씨가 운영하는 EG는 선거 이후 내리막을 타는 모습이다. EG는 지난해 12월 초 5만원선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현재는 3만원대 후반까지 내려왔다. 박 당선인의 사촌인 박설자씨 남편 김희용씨가 회장으로 있는 동양물산도 대선 이후에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정책주들은 상승세를 타는 양상이다. 박 당선인의 저출산 정책 수혜주로 꼽히는 보령메디앙스와 아가방컴퍼니는 강세다. 보령메디앙스와 아가방컴퍼니는 대선 이후 각각 45.59%, 16.69%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정책 테마주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품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A증권사 스몰캡 연구원은 "과거 대선 때 만들어진 4대강 테마나 행정수도 이전 관련 테마주 등도 급등세를 탔었지만 실질적인 수혜가 크지 않았고 현재는 주가도 제자리로 돌아온 상황"이라며 "막연한 기대감으로 형성되는 테마주를 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문재인 전 후보 테마주들은 전반적으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대주주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주치의였다는 우리들제약과 우리들생명과학, 문 전 후보가 변호사 시절 고객사였다는 바른손은 대선 이후 각각 6~7%가량 하락했다.
◆'검은 머리 외국인'의 작전(?)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최근 급등세를 보이고 있는 테마주들의 외국인 거래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소위 '검은 머리 외국인'들이 작전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테마주의 경우 보통 개인의 거래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최근 급등한 테마주들은 외국인의 거래비중이 높아 외국인을 가장한 한국인이 시세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도 외국인을 가장한 국내 투기세력의 시세조종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및 금융당국은 특별한 이유 없이 주가가 움직이는 정치테마주의 경우 작전세력의 개입과 주가 폭락 가능성이 짙은 만큼 가능한 투자를 피하는 것이 좋다고 끊임없이 조언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기업가치에 근거하지 않는 테마주의 주가는 관련 테마 소멸과 함께 필연적으로 꺼질 수밖에 없다"며 "투자자들은 근거 없이 주가가 급등하는 테마주를 투자기회로 오인하지 말고 기업실적이 수반되는 우량주 위주로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금감원의 정치테마주 기획조사 결과 42건의 불공정거래가 적발돼 총 590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27명의 혐의자가 검찰에 넘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