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19세기 후반 한 부보상이 있었다. 부지런히 모은 돈을 밑천 삼아 1896년 서울의 배오개시장(현 종로4가)에 포목상 ‘박승직상점’을 개설했다. 1915년 판매하기 시작한 화장품 ‘박가분’이 여성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며 높은 판매고를 올리는 등 승승장구했다. 1925년에는 ‘박승직상점’을 ‘주식회사 박승직상점’으로 개편했다.
지금의 두산그룹을 일궈낸 창업주 박승직의 성공기다. <박승직상점>은 박승직이라는 상인을 통해서 구한말에서 1960년대 초반까지 한국의 상계(商界)를 보여준다. 그저 하나의 위인기라기보다는 한국 근현대사를 지나며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변화 속에서 한국의 상계가 어떻게 적응·성장해왔는지 한눈에 가늠해 볼 수 있는 역사적 사료에 가깝다. 이는 한국 기업의 성장사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도 기업인들이 견지해야 할 철학적 원칙들을 주인공 박승직과 주변 인물들의 역동적인 상업 활동을 통해서 일깨운다.
가난과 착취의 소작농을 벗어나 상인의 길을 꿈꾸던 박승직은 가출을 감행한다. 육의전에서 간신히 일자리를 얻어 일하다가 다시 집으로 끌려오는 등 절치부심한다. 우여곡절 끝에 해남 관아에서 3년간 일하며 모은 종자돈 300냥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상인의 길에 나선다. 젊은 상인 박승직에게 필요한 것은 상인의 철학이었다. 박승직은 경험과 지혜가 많은 스승의 가르침을 찾아 헤맸다. 육의전 일을 잠깐 할 때 모셨던 사대부 출신의 행수 어른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가르침을 청한다. 이때 이 책의 하이라이트가 펼쳐진다.
박승직은 행수 어른에게 수차례 가르침을 간청한다. 처음에는 꿈적도 하지 않던 행수 어른은 그의 끈기와 인내, 진정성에 감복한 나머지 마침내 입을 뗀다. 첫 가르침은 바로 사람을 보는 법이었다. “생각해 보게나. 농사가 하늘과의 동업이라면 상업은 곧 사람과의 동업일진대, 그렇다고 한다면 상인이 되고자 하는 자네는 무엇보다 자네와 동업할 수밖에 없는 사람부터 판별해 옥석을 가릴 줄 알아야 하질 않겠는가.”
개성상인이 사람 됨됨이를 알아보는 방법은 여덟 가지였다. 1)묻는 말에 얼마나 꾸밈이 있는가(詳), 2)묻는 말에 얼마나 임기응변이 있는지(變), 3)사람을 사이에 넣었을 때 얼마나 성실한가(誠), 4)마음에 품은 생각이나 감정을 스스럼없이 얘기해 볼 때 솔직한 덕행을 지녔는가(德), 5)재물을 맡겼을 때 얼마나 청렴한가(廉), 6)여색 사이에서 얼마나 바른지(貞), 7)위급한 상황에서 용기 있게 대처하는가(勇), 8)서로 만취한 이후에도 몸가짐이 흐트러지지 않는가(態)였다.
이러한 행수의 가르침은 기본적인 것이니 상인의 길은 스스로 찾아나서야 했다. 15년 동안 박승직은 직접 자신이 짐을 짊어지고, 전국을 떠돌아다닌다. 많은 이익이 남지 않아도 부지런히 그리고 조금씩 자신의 자본을 모아간다. 그것은 콩을 한 알 두 알 모아 마침내 거대한 산을 이뤄가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모은 것은 바로 신뢰하고 믿을 만한 전국 각지의 거래처였다. 이러한 신뢰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박승직상점을 베오개에 세운다. 그러한 신뢰가 있었기에 더 이상 운송을 해주는 상점이 아니라 방문을 받는 근대적인 상점이 됐다.
초창기 박승직상점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결국 끝내 살아남은 것은 박승직상점이었고 그의 후예들이었다. 한때 조선을 들썩이게 했던 김만복과 장대경의 후예들은 흔적조차 없다. 손쉬운 방법으로 당장에는 영화를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상인의 철학을 지키는 이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박상하 지음 | 매경출판 펴냄 | 1만3000원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8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 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보도자료 및 기사 제보 ( [email protected] )>